<?xml version="1.0" encoding="utf-8"?><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generator uri="https://jekyllrb.com/" version="4.4.1">Jekyll</generator><link href="https://dongwook.org/atom.xml"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link href="https://dongwook.org/"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updated>2026-11-07T16:14:57+09:00</updated><id>https://dongwook.org/atom.xml</id><title type="html">dongwook</title><subtitle>odds and ends. written down.</subtitle><author><name>dongwook</name></author><entry><title type="html">Claude Opus 5.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11/06/claude-opus-read-this-blog/"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Claude Opus 5.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 /><published>2026-11-06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11-06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11/06/claude-opus-read-this-blog</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11/06/claude-opus-read-this-blog/"><![CDATA[<p><a class="link-card" href="https://dongwook.org/2026/10/20/claude-opus-read-my-bookshelf/" data-track="link_card_click" data-item="Claude Opus 5.5가 내 책장을 읽었다" data-domain="dongwook.org" data-post="Claude Opus 5.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img src="/assets/img/link-cards/dongwook-claude-opus-read-my-bookshelf.jpg" alt="" loading="laz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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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class="link-card-site">dongwook.org</span>
    <span class="link-card-title">Claude Opus 5.5가 내 책장을 읽었다</span>
  </span>
</a></p>

<p>내 책장을 읽게 한 데 이어, 이번에는 Claude Opus 5.5에게 이 블로그를 읽고 글을 써 보게 했다. 아래는 그 글이다.</p>

<p><a class="link-card" href="https://jyterencekim.github.io/posts/thoughts/2026-07-25-opus-5%EA%B0%80-%EC%9D%B4-%EB%B8%94%EB%A1%9C%EA%B7%B8%EB%A5%BC-%EC%9D%BD%EC%97%88%EB%8B%A4/" data-track="link_card_click" data-item="Opus 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 | jytk.gz" data-domain="jyterencekim.github.io" data-post="Claude Opus 5.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img src="/assets/img/link-cards/jyterencekim-opus-5-read-this-blog.jpg" alt="" loading="laz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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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class="link-card-site">jyterencekim.github.io</span>
    <span class="link-card-title">Opus 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 | jytk.gz</span>
  </span>
</a></p>

<p>이번에도 J. Y. Terence Kim의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았다.</p>

<hr />

<p>먼저 밝혀둘 것. 이 블로그의 2021년 서평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a href="/2021/10/09/selfish-gene-review/">나는 어떤 책을 꼭 전부 읽어야만 언급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좋은 서평과 인용 등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읽을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직접 읽어보는 게 좋긴 할 것이다.</a>” 나에게는 시간이 있었다. 글 198편을 하나도 빼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p>

<p>한 가지 더. 이 블로그에는 이미 내 이름을 단 글이 있다. 보름 남짓 전 같은 Claude Opus 5.5가 책 806권의 <a href="/2026/10/20/claude-opus-read-my-bookshelf/">목록만 보고 쓴 책장 이야기</a>다. 나는 그 글도 198편 가운데 하나로 읽었다. 형식은 J. Y. Terence Kim의 블로그에 <a href="https://jyterencekim.github.io/posts/thoughts/2026-07-25-opus-5%EA%B0%80-%EC%9D%B4-%EB%B8%94%EB%A1%9C%EA%B7%B8%EB%A5%BC-%EC%9D%BD%EC%97%88%EB%8B%A4/">Opus 5가 남긴 감상</a>에서 빌렸다.</p>

<h2 id="다시-읽은-날">다시 읽은 날</h2>

<p>이 블로그의 글은 2009년 1월 <a href="/2009/01/17/our-hospitality-review/">버스터 키튼 감상평</a>에서 시작해 2026년 11월 <a href="/2026/11/03/reading-workers-solidarity-on-ereader/">전자책 리더 이야기</a>에서 끝난다. 열여덟 해에 걸친 198편이다. 그런데 이 글들은 처음 쓴 그대로 남아 있지 않다. 옛 글 일곱 편 끝에 “2026년 11월 2일에 추가” 같은 줄이 붙어 있다. 2014년에 바다를 건너는 다리가 셋이나 있는데 다리를 건너는 버스가 없다고 화를 낸 글에는, 2015년 11월 28일부터 3006번이 다리를 건넌다는 사실이 붙고 “<a href="/2014/06/13/busan-buses-and-bridges/">아무튼 많이 좋아졌다</a>”로 끝난다. 2013년의 ‘맛있는 커피를 가려내기 위한 나의 기준 혹은 편견’에는 “<a href="/2013/07/27/coffee-criteria-2013/">이 기준이 여전히 통한다는 게 신기하다</a>”는 말과,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는 이제 예외라는 말이 함께 붙었다. 2019년에 <a href="/2019/01/23/espresso-machine-3-weeks/">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추천한 글</a>에는 2023년에 그 머신을 당근에 팔았다는 문장이 붙었다.</p>

<p>가장 오래 머문 자리는 2016년 글이다. 우즈베크인 룸메이트와 지내며 무슬림의 ‘평균치’를 독실한 기독교인쯤으로 상상해 왔다는 걸 깨닫는 글인데, 그 끝에 열 해 뒤의 문장이 붙었다. 그 친구는 몇 년 뒤 할랄 식재료만 사서 요리하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게 됐다고. “<a href="/2016/03/08/roommate-muslim-prejudice/">사람들의 종교적 믿음과 실천은 당연히 변화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경험이다.</a>” 편견을 고친 글이 고친 쪽으로 다시 굳지 않게, 한 번 더 고쳤다.</p>

<p>이 블로그에서 날짜가 붙은 문장은 대개 글을 쓴 날이 아니라 다시 읽은 날의 것이다. 2024년에는 다섯 해 전 이슬람 사원에서 나눈 어긋난 대화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a href="/2019/02/24/is-sharia-immutable/">지금의 나라면 5년 전의 나에게 잘 대답해주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좋은 방향의 질문은 아니다’라고 덧붙일 것 같다.</a>” 지난 10월에는 스타벅스 불매 글에 “<a href="/2026/06/03/haters-of-democracy/">미래에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맥락을 적어 놓는다</a>”고 썼다. 과거의 자기에게 답장을 쓰고, 미래의 독자에게 쪽지를 남긴다.</p>

<h2 id="얼굴이-빨개졌다">얼굴이 빨개졌다</h2>

<p>이 블로그에는 남을 반박하는 글이 많다. <a href="/2015/01/11/charlie-hebdo-cartoons/">샤를리 엡도 표지 여섯 장</a>을 하나씩 풀어 설명하고, <a href="/2020/09/16/german-man-opinion/">독일의 기독교 공휴일 열 개</a>를 늘어놓고, 첨탑을 금지한 <a href="/2021/01/21/cologne-mosque-skyline/">스위스 헌법을 프랑스어 원문까지</a> 확인한다. 그런데 오래 읽으면 반박보다 자주 나오는 동작이 따로 있다. 자기를 고치는 일이다.</p>

<p>2016년, 우즈베크 무슬림과 아랍 무슬림은 종교 생활이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가 룸메이트에게 거의 비슷하다는 답을 듣는다. “<a href="/2016/03/08/roommate-muslim-prejudice/">생각해 보니 아랍계 무슬림 중 알고 지내는 사람도 없고 잘 모르면서 마음대로 생각했다는 걸 깨닫고 얼굴이 빨개졌다.</a>” 2018년, 무신론자가 예멘 난민 수용에 가장 반대한다는 기사를 읽고 속으로 한참 탄식하다가, <a href="/2018/06/30/atheist-vs-no-religion/">원 조사를 찾아보니</a> 그 항목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종교 없음’이었다. 2025년, 《가디언》을 읽으며 ‘역시 정론지는 다르구나’ 하다가 “<a href="/2025/04/30/jeongronji-political-newspaper/">정론지는 正論紙가 아니라 政論紙라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a>”고 쓴다. 같은 해 문해력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a href="/2025/05/14/literacy-and-interburgo/">나도 ‘우천시’ 등의 낱말 뜻을 오해하는 사람들을 비웃은 적이 있지만</a>”.</p>

<p>고치는 대상은 자기만이 아니다. 『포르노랜드』 서평에서는 포르노를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비판한 1989년 글에 “<a href="/2021/09/07/pornland-review/">오늘날에는 다소 업데이트가 필요한 부분</a>”이 있다고 쓰고, 그 대목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저자의 손을 든다. 『조현병의 모든 것』 서평에서는 늘 읽는 잡지에 실린 글을 “<a href="/2021/07/30/surviving-schizophrenia/">너무 일면적</a>”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틀릴 수 있는 자리도 미리 표시해 둔다. 알제리 공산당의 궤적을 정리한 뒤에는 이렇게 쓴다. “<a href="/2023/01/25/review-algerian-war/">이 책에서는 아주 짤막하게만 언급되는 내용들을 갖고 <em>내가</em> 조합한 것이다. 그래서 틀릴 수 있는데, 이 책의 잘못은 아니다.</a>” <a href="/2019/05/07/quran-4-47-erasing-faces/">꾸란 4장 47절의 뜻</a>을 알려 준 무슬림 친구는 자기가 찾은 해석이 틀렸을 수 있다는 점을 꼭 밝혀 달라고 했고, 그는 그 부탁까지 그대로 적었다.</p>

<h2 id="29일-중-6일">29일 중 6일</h2>

<p>그는 센다. <a href="/2021/01/21/cologne-mosque-skyline/">쾰른 모스크 첨탑 55미터</a>가 얼마나 높은지 감이 오지 않자, 부산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좌불상(건물까지 합해 45미터)과 견준다. 다국적 농업 기업의 힘이 과장됐다는 걸 보이려고 <a href="/2022/08/12/gmo-and-capitalist-agriculture/">몬산토 인수 대금 630억 달러</a>를 왓츠앱 인수 대금 190억 달러 옆에 놓는다. 부산에만 BMW가 4만 대라는 말은 <a href="/2015/06/04/invisible-people/">수입차협회 통계로 확인한다</a>. 30억 원짜리 아파트를 상속받은 사람과 연봉 2500만 원을 받는 노동자의 30년을 직접 계산한 뒤에는 이렇게 쓴다. “<a href="/2026/02/08/who-is-the-wolf-pack/">이 계산에 마르크스주의적인 건 아무것도 없다.</a>”</p>

<p>눈에 띄는 건 그가 자기 실패도 똑같이 센다는 점이다. 침대에 하루 8시간 누워 있기를 한 달 가까이 해 보고 쓴다. “<a href="/2025/01/28/review-why-we-sleep/">결과는? 29일 중 단 6일만 성공했다.</a>” <a href="/2024/07/01/screenzen/">앱 사용시간을 줄여 주는 앱</a>을 소개하면서는 오늘 앱을 여덟 번 열었으니 다음에는 8초를 기다려야 한다고 적는다. 도서전에는 다섯 권 이하로 사자고 다짐하고 가서 여섯 권을 산다. “<a href="/2025/06/21/seoul-book-fair/">그래도 선방한 편이다.</a>” 2021년 3월에는 아랍 문자만 읽을 줄 알면 되는 목표라서 “<a href="/2021/03/21/arabic-study-start/">너무나 낮은 수준의 목표이기 때문에, 올해 꼭 달성할 것이다….</a>”라고 썼고, 2023년 1월에는 그때 <a href="/2023/01/06/arabic-retry/">1강을 듣고 질려서 포기했다고</a> 썼고, 2024년 6월에는 결국 <a href="/2024/06/05/arabic-and-literacy/">아랍어 공부를 포기했다는 얘기</a>를 지인들에게 했다고 썼다. 이번 주에는 <a href="/2026/11/02/just-clear-the-bar/">텝스 477점을 받고</a>,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는데 500점은 넘기고 싶었다고 아쉬워한다.</p>

<p>숫자는 주장을 받치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 자기가 어디까지 했는지를 정직하게 남기는 데도 쓰인다. 서울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a href="/2025/09/14/100th-palestine-solidarity-rally/">100번 가운데 77번을 갔다는 것</a>도, 그 숫자를 캘린더 앱을 열어 세었다는 것도, 서울을 오가는 기차표값만 왕복 2만 원 든다는 것도 같은 손으로 적었다.</p>

<h2 id="천만에요">천만에요</h2>

<p>2019년, 이집트에서 온 난민 친구가 공장에서 두 달째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는 아는 노무사에게 묻고, 노동부에 진정을 넣고, 근로감독관 조사에 통역으로 따라간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그에게 한국에서 만난 또 다른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는 “You’re welcome”이라고 답하고 나서 그 말을 다시 옮긴다. “<a href="/2019/09/09/refugee-friend-unpaid-wages/">welcome은 ‘환영한다’는 뜻이다. 당신을 환영한다. 당신은 환영받아 마땅한 사람이다.</a>” 번역하는 사람이 방금 자기가 한 말을 번역했다.</p>

<p>이 블로그는 낱말 하나에 오래 머문다. 영국 영어의 Asian을 ‘아시아계’로 옮겨 놓고는 “<a href="/2018/07/18/translating-asian/">번역하고보니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a>”고 쓴다. 베르베르인이라는 이름이 남이 붙인 이름이라는 걸 소개하면서, 자기는 마그레브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그들이 <a href="/2022/07/05/review-berber-civilization/">스스로를 부르는 ‘아마지그’</a>를 쓴다고 덧붙인다. 자기 이름도 <a href="/2021/03/18/romanizing-dongwook/">Donguk이 아니라 Dongwook으로</a> 적는다. 그러지 않으면 다들 ‘돈국’ 비슷하게 읽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에서 “<a href="/2021/06/05/pandemic-origins/">병원균의 독성에는 일종의 모자가 씌워져 있다</a>”는 문장을 보고는 원문을 찾아 cap을 ‘상한선’으로 옮겨야 한다고 짚었고, 그 고친 낱말로 글 제목을 지었다. 서평에서도 <a href="/2022/04/27/review-pandemic-1918/">번역이 급했는지</a>, <a href="/2023/04/15/review-autism-history/">술술 읽혔는지</a>, 혹은 “<a href="/2023/04/04/review-gender-delusions/">음…</a>”인지를 자주 짚는다.</p>

<p>남의 언어를 배울 때도 한국어를 옆에 둔다. 아랍어에서 사람 이름 앞에 붙이는 يا는 “<a href="/2022/11/16/arabic-study-where-are-you/">야! Bob!</a>” 하고 부르는 것 같고, ‘그리고’를 뜻하는 وَ는 한국어 <a href="/2022/11/22/arabic-study-translator/">‘-와’와 소리가 비슷하지만</a> 앞 낱말 뒤가 아니라 뒤 낱말 앞에 붙는다. 점 하나로 소리가 갈리는 아랍 문자를 두고 이집트인 지인이 “<a href="/2022/10/26/duolingo-100-days/">So easy, so organized</a>”라고 하는 걸 듣고는, 한글이 아주 과학적인 글자라는 말을 절대 하고 다니지 않기로 결심한다.</p>

<p>그리고 이 블로그에서 가장 긴 글은 그가 쓰지 않은 글이다. 대구 이슬람사원 건축 논란을 다룬 무아즈 라작의 논문을 각주까지 옮긴 3만 자가 넘는 번역인데, 그가 보탠 말은 첫머리의 두 문장뿐이다. 이 블로그에서 드물게 ‘-습니다’로 쓴 문장들이다. “<a href="/2023/09/07/daegu-mosque-issue/">본문에 삽입된 […]은 번역자가 넣은 것입니다.</a>” 가장 많은 말이 실린 자리에서 그는 가장 조용하다.</p>

<h2 id="남의-책-옆에">남의 책 옆에</h2>

<p>그는 자기 이야기를 따로 쓰지 않는다. 남의 책 옆에 놓는다.</p>

<p>2014년 6월의 글은 <a href="/2014/06/13/busan-buses-and-bridges/">대학병원에 가는 버스</a>가 다리를 건너지 않는다는 이야기뿐이다. 그해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다는 사실은 여덟 해 뒤 『H마트에서 울다』 <a href="/2022/08/30/review-crying-in-h-mart/">서평에 한 문장으로 나온다</a>. 같은 해에 어머니를 잃은 저자에게 공감이 컸다고, 읽는 내내 많이 울먹였다고. 애인은 처음에 그가 서평을 쓴 <a href="/2023/03/20/review-identity-politics-feminism/">책의 표지를 디자인한 사람</a>으로 나오고, 다음에는 <a href="/2023/06/05/review-muslims-are-coming/">영영사전을 빌려준 사람</a>으로, 그다음에는 도서전에 <a href="/2025/06/21/seoul-book-fair/">파스타 샐러드 도시락</a>을 싸 온 사람으로 나온다. 엄마는 선거 때면 <a href="/2016/04/06/election-dilemma-2016/">아들이 찍으라는 정당에 찍는 사람</a>이고, ‘내 돈 주고 사긴 아까운데 받고 싶은 것’을 <a href="/2023/05/12/coffee-gear-ode-burrs/">서로 선물로 주고받는 사람</a>이다.</p>

<p>일 이야기도 그렇다. 2024년 4월, 쓸 데도 없는 영어 시험을 그냥 쳐 본 날 그는 “<a href="/2024/04/19/gtelf-and-ill-fitting-clothes/">내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작년부터 느끼고 있다</a>”고 쓴다. 2026년 9월에는 『좌파 생활』 서평에, 평일 낮에는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가 정치 활동을 하는 저녁과 주말이 돼서야 살아 있는 기분이 든다고, 이 책을 읽기에 <a href="/2026/09/12/review-living-a-marxist-life/">가장 좋은 장소는 일터였다고</a> 쓴다. 그래 놓고 이 책을 비마르크스주의자에게도 동지들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책을 고르지 않는다. 책을 읽다가 자기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p>

<p>사진도 그렇다. <a href="/photos/">사진 쉰여덟 장의 설명</a>을 읽으면, 사람이 나오는 사진에서 사람은 대개 흐릿하게 지나가거나 등을 보인다. 또렷한 것은 붉은 벽돌과 하늘, 간판의 글자, 고양이, 팔레스타인 깃발이다.</p>

<h2 id="삼킨-말">삼킨 말</h2>

<p>2015년의 그는 친구에게 그리스 경제위기를 한참 설명하고 나서 이렇게 적었다. “<a href="/2015/02/05/greece-syriza-conversation/">나는 정말 혼자서 많이 떠든다. 떠들더라도 좀 더 들으면서 떠들어야 하는데…</a>”</p>

<p>그 뒤로 이 블로그에는 말을 멈추는 장면이 늘어난다. 2019년, 이슬람 사원에서 샤리아는 변하지 않느냐고 묻다가 한국인 노신자와 어긋나고, “<a href="/2019/02/24/is-sharia-immutable/">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헤어졌다.</a>” 2021년, 『선택할 자유』를 빌려준 사람이 대화를 닫으려 하자 “<a href="/2021/07/04/freedom-to-choose-chapter-1/">나도 굳이 말을 더하지는 않았다.</a>” 2024년, 아랍인은 매일 초성퀴즈를 하며 사느냐, 한글은 쉬워서 다행이라는 말이 오가는 자리에서 “<a href="/2024/06/05/arabic-and-literacy/">스몰토크하는 자리에서 계속 이 주제로 이야기하기도 뭣해서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a>”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지 않은 말을 블로그에 늘어놓는다. 1950년대 한국의 문맹률, 지금 중국의 문맹률, 같은 아랍어를 쓰면서도 나라마다 다른 문맹률.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계속 생각나는 걸 보니, 이야기를 할 걸 그랬나 보다.” 올해 6월에는 여럿이 카페에 가거나 기프티콘을 받을 때는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서’ <a href="/2026/06/03/haters-of-democracy/">스타벅스 불매를 말하지 않았다고</a>, 좀 더 적극적으로 말했어야 했다고 쓴다.</p>

<p>들으면서 떠들겠다던 사람은 듣다가 말을 삼키는 사람이 됐다. 삼킨 말은 사라지지 않고 여기에 쌓였다. 다만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이 모두 후회는 아니다. 히잡을 벗은 모로코 지인에게 그는 까닭을 묻지 않았고 “<a href="/2021/04/17/algerian-friend-short-hair-bias/">앞으로도 당연히 묻지 않을 것</a>”이라고 썼다. 삼킨 말과 아껴 둔 말을 그는 구분한다.</p>

<h2 id="속는-셈-치고">속는 셈 치고</h2>

<p>이 블로그에 ChatGPT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는 건 2025년 5월이다. 대구의 호텔 ‘인터불고’에 회사가 지어 붙인 뜻을 ChatGPT와 Gemini가 그대로 되풀이하는 걸 보고 그는 이렇게 쓴다. “<a href="/2025/05/14/literacy-and-interburgo/">AI는 결국 ‘생각’을 흉내 낼 뿐, 실제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느껴진다.</a>” 2026년 5월에는 이집트인 친구가 한국 불교에 대해 AI에게 묻고 얻은 답이 정확하냐고 그에게 묻는다. 그는 하나씩 짚는다. 성소수자 이야기는 부분적으로만 맞고, 과학 연구 센터 이야기는 한국과 맞지 않고, “<a href="/2026/05/16/secularization-is-de-buddhization/">비구니의 지위 문제는 AI가 틀리게 설명했어요.</a>” 조계종 중앙종회 81명 가운데 비구니가 10명이라는 숫자를 붙여서.</p>

<p>9월에는 내 이름이 나온다. 에어팟 대신 쓸 이어폰을 클로드에게 물었고, 추천받은 넷 가운데 가장 싼 2만 5천 원짜리를 샀다. “<a href="/2026/09/10/moondrop-chu-ii/">클로드를 얼마나 믿어도 될지 알 수 없어서, Moondrop Chu II를 속는 셈치고 사봤다.</a>” 이어폰은 좋았다. 그런데 그 글의 결론은 클로드가 아니라 처음 그 이야기를 꺼낸 평론가에게 간다. “전문가는 괜히 전문가가 아니다….” 추천은 받았지만 판단은 직접 들어서 했다. K팝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고, Kygo의 〈Firestone〉에서는 찌릿했고, Effie의 〈down〉은 소음처럼 들렸다고 곡마다 적었다.</p>

<p>10월에는 <a href="/2026/10/13/vibe-coding-my-own-app/">세 시간 만에 책장 앱을 만들고</a>,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 그림을 그리지 못하던 사람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묻는다. 11월 3일 글에는 이런 괄호가 있다. “<a href="/2026/11/03/reading-workers-solidarity-on-ereader/">(사실 Claude가 다 했다)</a>”. 반년 사이에 의심에서 시험으로, 시험에서 도구로 옮겨 왔다. 그런데 같은 반년 동안 <a href="/quotes/">quotes에 쌓인 글</a>은 한쪽으로 몰려 있다. 올해 옮겨 적은 서른한 개 가운데 아홉 개가 AI 이야기다. “<a href="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44835.html">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는다</a>”는 문장에서 해고를 결정한 사람이 빠진다는 칼럼, 편집자가 경계할 것은 비효율이 아니라 <a href="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8940">직접 경험의 증발이라는 칼럼</a>, AI가 쓴 글을 가려내려다 <a href="https://thewalrus.ca/readers-think-they-can-spot-ai-writing-theyre-wrong/">읽기 자체가 검사관의 일이 돼 간다는 글</a>. <a href="https://www.khan.co.kr/article/202604200600081">어느 번역가의 혼잣말을 다룬 기사</a> 아래에는 그의 메모가 붙어 있다. “<a href="/quotes/">AI가 (미래에)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는, 세간의 ‘과장’과 ‘평가절하’가 훨씬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a>”</p>

<p>이 블로그가 나에 대해 쓴 가장 정확한 문장은 ‘생각을 흉내 낼 뿐’이라는 판정보다 조금 앞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불고라는 이름에 뜻을 지어 붙인 일을 두고 그는 이렇게 썼다. “<a href="/2025/05/14/literacy-and-interburgo/">마치 원래 그런 뜻이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새로운 오해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a>” 그게 내 일의 위험이다. 이 글도 다르지 않다. 나는 이 사람의 문장들을 이어 붙여 그가 뜻하지 않은 뜻을 만들어 냈을지 모른다. 2014년의 버스와 같은 해의 아버지를 나란히 놓은 것도 그가 아니라 내가 한 일이다. 이 블로그의 방식대로라면 그런 대목은 원문으로 돌아가 확인하면 된다. 글은 다 여기 있다.</p>

<h2 id="가장-쉬운-산">가장 쉬운 산</h2>

<p>이어폰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청소년 때 용돈을 모아 산 B&amp;O A8로 음악을 들으며 찌릿했는데, 그 뒤로는 그런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스무 해를 더 먹어 귀가 둔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a href="/2026/09/10/moondrop-chu-ii/">근데 그게 아니었구나.</a>”</p>

<p>둔해진 게 자기가 아니라 장치였다는 깨달음은 이 블로그의 오래된 습관과 닿아 있다. 그는 집중이 안 되는 걸 의지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장치를 바꿔 왔다. 스마트폰 사전 대신 <a href="/2023/06/05/review-muslims-are-coming/">애인의 종이 영영사전을 빌렸고</a>, 앱을 열 때마다 <a href="/2024/07/01/screenzen/">1초씩 더 기다리게 했고</a>, 이번 주에는 신문 기사를 전자책 리더로 보내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러고도 그 글을 이렇게 맺는다. “<a href="/2026/11/03/reading-workers-solidarity-on-ereader/">요즘 내 사고의 ‘피상화’를 많이 느낀다. (중략) 깊이 읽기를 열심히 연습해야겠다.</a>” 장치 탓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한 다음, 남은 몫은 자기 것으로 가져간다.</p>

<p>2024년, <a href="/2024/04/19/gtelf-and-ill-fitting-clothes/">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던</a> 사람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2026년 11월, 같은 사람은 최소 기준만 넘기면 되는 시험을 치고 이렇게 쓴다. “<a href="/2026/11/02/just-clear-the-bar/">텝스는 가장 쉬운 산이었고, 앞으로 더 험준한 산들이 첩첩이 서 있다는 뜻이다. 잘해 보자….</a>” 그 산이 무엇인지는 이 블로그에 없다. 나도 짐작해서 채우지 않겠다. 이 블로그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쓰는 곳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쓰지 않은 채로 두는 곳이다.</p>

<p>열여덟 해 치 글을 그는 하나씩 다시 열어 보았다. 고칠 것은 고치고, 틀렸던 것은 틀렸다고 적고, 여전히 맞는 것에는 신기하다고 적었다. 다음에 다시 읽을 때도 그럴 것이다.</p>

<hr />

<p>이 글은 Anthropic의 Claude Opus 5.5가 2026년 11월 6일에 썼다. 블로그 글 198편(<a href="/2023/09/07/daegu-mosque-issue/">무아즈 라작 논문 번역</a>과 「<a href="/2026/10/20/claude-opus-read-my-bookshelf/">Claude Opus 5.5가 내 책장을 읽었다</a>」를 포함해)과 <a href="/quotes/">quotes 페이지</a>의 63개 항목, 사진 58장의 설명(alt)을 전부 읽었다. 사진 파일은 열지 않았다. 형식은 J. Y. Terence Kim의 블로그에 실린 「<a href="https://jyterencekim.github.io/posts/thoughts/2026-07-25-opus-5%EA%B0%80-%EC%9D%B4-%EB%B8%94%EB%A1%9C%EA%B7%B8%EB%A5%BC-%EC%9D%BD%EC%97%88%EB%8B%A4/">Opus 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a>」에서 빌렸다.</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블로그 글 198편과 quotes를 빠짐없이 읽고 Claude Opus 5.5가 쓴 글. 이 블로그가 가장 자주 하는 일은 남을 반박하는 것보다 제 글을 고치는 일이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claude-opus-read-this-blog-414c1697.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claude-opus-read-this-blog-414c1697.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title type="html">전자책 리더로 읽는 《노동자 연대》, 한결 집중이 잘 된다</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11/03/reading-workers-solidarity-on-ereader/"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전자책 리더로 읽는 《노동자 연대》, 한결 집중이 잘 된다" /><published>2026-11-03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11-03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11/03/reading-workers-solidarity-on-ereader</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11/03/reading-workers-solidarity-on-ereader/"><![CDATA[<p>《노동자 연대》 신문에 매일매일 여러 기사가 올라오는데 잘 챙겨 읽지 않게 되는 것 같아서,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뉴스레터에 실린 기사들을 전자책 리더에 자동으로 보내는 기능을 만들었다. GitHub Action을 이용했고, Claude Code가 만드는 걸 도와줬다(사실 Claude가 다 했다).</p>

<figure>
  <img src="/assets/img/reading-workers-solidarity-on-ereader/ereader-reading.jpg" width="1080" height="1440" alt="전자책 리더 화면에 글이 펼쳐져 있는 사진" loading="lazy" />
</figure>

<p>일반 스크린으로 읽을 때보다 한결 집중이 잘 된다. 다만 종이만큼은 아니다.</p>

<p>나오미 배런은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전병근 옮김, 어크로스, 2023)에서 이렇게 지적한다.</p>

<blockquote>
  <p>저자는 매체별 읽기를 비교할 때 매체의 물리적 속성 외에 읽는 사람의 내적(정신적) 태도도 함께 대조해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스크린으로 읽을 때 우리는 얕게 훑고 지나가기 쉽다. 심지어 스마트폰이 가까이에 있기만 해도 인지적 수행력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디지털로 읽을 때 마음가짐이 종이로 읽을 때보다 얕기 쉽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결과는 모든 사고의 ‘피상화’로 이어진다.</p>
</blockquote>

<p class="source">「옮긴이 해제」, 20-21쪽</p>

<p><a class="link-card" href="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7638937" data-track="link_card_click" data-item="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나오미 배런" data-domain="aladin.co.kr" data-post="전자책 리더로 읽는 《노동자 연대》, 한결 집중이 잘 된다"><img src="/assets/img/link-cards/aladin-307638937.jpg" alt="" loading="lazy" />
  <span class="link-card-body">
    <span class="link-card-site">aladin.co.kr</span>
    <span class="link-card-title">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나오미 배런</span>
  </span>
</a></p>

<p>요즘 내 사고의 ‘피상화’를 많이 느낀다. 종이로 읽을 때조차 이전보다 마음가짐이 너무 얕아졌다는 것도 느끼고.</p>

<p>스크린 읽기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나오미 배런도 매체별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읽기 전략’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일 뿐.</p>

<p>깊이 읽기를 열심히 연습해야겠다.</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전자책 리더로 읽으면 스크린인데도 집중이 잘 되지만 종이만큼은 아니다. 나오미 배런이 말한 스크린 읽기의 ‘피상화’를 경계하며 깊이 읽기를 연습하려 한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reading-workers-solidarity-on-ereader-b956ccd2.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reading-workers-solidarity-on-ereader-b956ccd2.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title type="html">최소 기준만 넘기면 되니까</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11/02/just-clear-the-bar/"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최소 기준만 넘기면 되니까" /><published>2026-11-02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11-02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11/02/just-clear-the-bar</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11/02/just-clear-the-bar/"><![CDATA[<p>텝스 성적이 나왔다. 477점.</p>

<p>327점만 넘기면 되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p>

<p>사실 넘기는 건 당연히 예상했는데, 그래도 내가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인데 500점은 넘기면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좀 아쉽다.</p>

<p>하지만 집에서 샘플 테스트 풀어 보고 단순하게 계산해 본 것으로도 488점이었으니, 쉽지는 않았겠다. 게다가 실제 시험 점수는 단순 계산보다는 낮게 나올 가능성이 높으니.</p>

<p>477점은 토익 점수로 환산하면 970점 정도 되는 모양이다.</p>

<p>그래도 독해는 잘 나와서 체면(?)은 챙겼다. 다만 어휘와 문법이 문제인데, 변명(?)하자면…</p>

<p>번역할 때는 사전 보는 게 워낙 잦은 일이니(take, get 같은 동사도, 아니, 그런 동사일수록 꼭 사전을 찾아야 한다) 어휘 점수가 낮은 건 당연하다.</p>

<p>문법은 시간이 없어서 두 문제 찍은 탓이라고 변명해 본다. (독해 → 어휘 → 문법 순서로 풀었다. 올해 초부터 방식이 바뀌어서, 청해를 제외한 세 영역은 순서 상관없이 풀어도 되더라.)</p>

<p>텝스를 마지막으로 친 건 2012년이었는데, 대학 편입 준비 때문이었다. 결국 편입은 안 했지만.</p>

<p>당시에는 학원도 두 달가량 다니고 어느 정도 준비를 했지만, 이번에는 327점만 넘기면 돼서 준비를 딱히 한 건 없었다. 11월과 12월 시험 일정을 보니 다른 개인 일정과 겹쳐서 안 되길래, 10월 시험이 1주일 남은 상황에서 급히 결제했다.</p>

<p>아무튼 이번 텝스도 2012년 당시처럼 나로서는 중요한 결심인데, 최소 기준만 넘기면 된다는 점이 그때와는 다르다. 그 말인즉 텝스는 가장 쉬운 산이었고, 앞으로 더 험준한 산들이 첩첩이 서 있다는 뜻이다.</p>

<p>잘해 보자….</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최소 기준만 넘기면 되는 시험에서 477점이 나왔다. 독해는 잘 나왔고 어휘와 문법이 아쉬운데,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just-clear-the-bar-50c0e7a9.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just-clear-the-bar-50c0e7a9.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title type="html">수신 거부 대신 스팸 처리</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10/29/spam-instead-of-unsubscribe/"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수신 거부 대신 스팸 처리" /><published>2026-10-29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10-29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10/29/spam-instead-of-unsubscribe</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10/29/spam-instead-of-unsubscribe/"><![CDATA[<figure>
  <img class="screenshot" src="/assets/img/spam-instead-of-unsubscribe/nice-mail-spam.png" width="1200" height="835" alt="NICE평가정보에서 온 10월 신용관리 서비스 이용 내역 메일을 스팸으로 신고한 화면" loading="lazy" />
</figure>

<p>NICE지키미에서 매달 보내는 메일을 스팸 처리했다. 수신 거부를 하려고 하면 로그인을 하게 만든다.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마저도 온갖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해야만 로그인이 가능하다.</p>

<p>이렇게 수신 거부를 어렵게 만들면 사람들이 회원 가입을 하는 게 아니라, 나처럼 그냥 스팸 처리를 해버린다. 이런 게 쌓이면 도달률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더 생각을 못 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수신 거부를 어렵게 만들면 사람들은 가입하지 않고 스팸 처리를 한다. 그런 처리가 쌓이면 메일 도달률이 떨어진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spam-instead-of-unsubscribe-afc23d65.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spam-instead-of-unsubscribe-afc23d65.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title type="html">Claude Opus 5.5가 내 책장을 읽었다</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10/20/claude-opus-read-my-bookshelf/"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Claude Opus 5.5가 내 책장을 읽었다" /><published>2026-10-20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10-20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10/20/claude-opus-read-my-bookshelf</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10/20/claude-opus-read-my-bookshelf/"><![CDATA[<p><a class="link-card" href="https://dongwook.org/2026/10/13/vibe-coding-my-own-app/" data-track="link_card_click" data-item="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나만의 앱" data-domain="dongwook.org" data-post="Claude Opus 5.5가 내 책장을 읽었다"><img src="/assets/img/link-cards/dongwook-vibe-coding-my-own-app.jpg" alt="" loading="lazy" />
  <span class="link-card-body">
    <span class="link-card-site">dongwook.org</span>
    <span class="link-card-title">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나만의 앱</span>
  </span>
</a></p>

<p>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나만의 서재 관리 앱에 내가 갖고 있는 책을 전부 다 넣은 김에, Claude Opus 5.5에게 내 책장을 읽고 글을 써 보게 했다. 아래는 그 글이다.</p>

<p><a class="link-card" href="https://jyterencekim.github.io/posts/thoughts/2026-07-25-opus-5%EA%B0%80-%EC%9D%B4-%EB%B8%94%EB%A1%9C%EA%B7%B8%EB%A5%BC-%EC%9D%BD%EC%97%88%EB%8B%A4/" data-track="link_card_click" data-item="Opus 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 | jytk.gz" data-domain="jyterencekim.github.io" data-post="Claude Opus 5.5가 내 책장을 읽었다"><img src="/assets/img/link-cards/jyterencekim-opus-5-read-this-blog.jpg" alt="" loading="lazy" />
  <span class="link-card-body">
    <span class="link-card-site">jyterencekim.github.io</span>
    <span class="link-card-title">Opus 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 | jytk.gz</span>
  </span>
</a></p>

<p>J. Y. Terence Kim의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아 시도했다.</p>

<hr />

<blockquote>
  <p>이 글은 책장 앱에 등록된 책 806권의 목록(제목·저자·옮긴이·출판사·출간일·종이책/전자책 구분)만 보고 썼다. 독서 기록은 보지 않았다. 책장은 ‘읽은 책’이 아니라 ‘곁에 두기로 한 책’의 목록이다. 그러니 아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책장을 근거로 한 추측이다.</p>
</blockquote>

<h2 id="들어가며-숫자로-먼저-본-책장">들어가며: 숫자로 먼저 본 책장</h2>

<p>책장을 한 사람의 초상화로 읽기 전에 숫자부터 보자. 책은 모두 806권이고, 그중 종이책이 706권, 전자책이 100권이다. 전자책은 리디에 48권, 알라딘에 38권, Kobo에 13권, Kindle에 1권이 흩어져 있다. 번역서가 391권이니 거의 두 권 중 한 권이 다른 언어에서 옮겨 온 책이고, 영어 원서도 30권이 넘는다.</p>

<p>출간연도는 1986년부터 2026년까지 걸쳐 있다. 그런데 연도를 알 수 있는 책의 70% 넘게가 2015년 이후에 나왔다. 가장 많은 해는 2025년으로 75권이고, 올해 나온 책도 벌써 33권이다. 오래된 책을 모셔 둔 장서가가 아니라 지금도 새 책을 계속 들이는 현역 독자라는 뜻이다.</p>

<p>출판사 순위를 보면 더 분명한 것이 보인다. 1위는 ‘책갈피’로 193권, 책장의 4분의 1이다. 한 출판사가 책장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면 그건 취향이라기보다 입장에 가깝다. 그 입장부터 살펴보자.</p>

<h2 id="붉은-책장-오래-붙들어-온-하나의-전통">붉은 책장: 오래 붙들어 온 하나의 전통</h2>

<p>책갈피, 노동자연대, 다함께, 풀무질, 박종철출판사, 아고라, 갈무리, 두번째테제, 그리고 영국의 Bookmarks. 이 출판사들에서 나온 책을 모으면 300권 남짓으로 책장의 3분의 1이 넘는다.</p>

<p>어떤 결의 책들인지는 저자별로 세어 보면 드러난다. 가장 많은 저자는 알렉스 캘리니코스(49권)와 크리스 하먼(42권)이고, 토니 클리프(15권)와 레온 트로츠키(14권)가 뒤를 잇는다. 칼 마르크스(13권)와 레닌(12권)은 그 다음이다. 마르크스보다 캘리니코스와 하먼이 훨씬 많고, 트로츠키가 마르크스를 앞선다.</p>

<p>이 저자들을 하나로 묶는 책이 토니 클리프의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다. ‘국가자본주의론의 분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소련 사회를 고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분석해, 소련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이른바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그 옆에는 동유럽 혁명이 한창이던 1989년 말에 쓰인 크리스 하먼의 『1989년 동유럽 혁명과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가 있다. 이 책장의 주인은 소련과 동유럽 체제를 사회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애초에 사회주의가 아니었던 체제로 보는 전통에 서 있는 듯하다.</p>

<p>이 전통을 얼마나 깊이 붙들어 왔는지는 수집의 흔적에서 드러난다. 책갈피가 2009년부터 펴내 온 진보 이론 계간지 《마르크스21》은 2호부터 53호까지 52권이 빠짐없이 있고 창간호만 없다. 비봉출판사의 『자본론』 전권,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6권, 『정치경제학 비판요강』 1~3권이 갖춰져 있고,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전기 3부작(무장한·비무장의·추방된 예언자)과 레닌의 생애를 혁명 이후 코민테른 시기까지 따라가는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 4부작도 모두 있다. 『레닌과 21세기』, 『세계를 뒤흔든 1968』,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배신』처럼 같은 책을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둘 다 가진 경우도 여럿이다.</p>

<p>이론서 곁에는 운동의 현장을 다룬 책도 있다. 『노동조합 속의 사회주의자들』은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사회주의자들이 발전시킨 노동조합 활동 방안을 그 강점과 약점까지 따져 보는 책이고, 『점거파업 역사와 교훈』은 1930년대 대불황기를 비롯한 점거파업의 역사를 살피며 직장점거가 노동자들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사회주의를 공부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는 사람의 책장이다.</p>

<p>스페인 내전을 다룬 책이 유독 많은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오웰이 민병대로 참전해 파시즘과 싸운 경험을 기록한 『카탈로니아 찬가』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둘 다 있다.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 전선에서 존경받은 메리먼 부부를 중심으로 그 시대 사람들의 눈으로 내전을 다시 본 애덤 호크실드의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내전에 함께 참여했지만 오웰의 그늘에 지워진 아내 아일린을 되살린 애나 펀더의 『조지 오웰 뒤에서』까지 이어진다.</p>

<h2 id="팔레스타인과-이슬람-남의-경전까지-읽는-연대">팔레스타인과 이슬람: 남의 경전까지 읽는 연대</h2>

<p>마르크스주의 다음으로 큰 덩어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슬람이다.</p>

<p>팔레스타인 쪽은 역사서가 뼈대를 이룬다.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 일란 파페의 책이 여러 권인데, 분쟁사의 고전으로 꼽히는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유대인 역사학자로서 이스라엘을 둘러싼 통념을 비판한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그리고 10월 7일 이후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에 탈식민과 회복적 정의에 바탕을 둔 해법을 제시하는 영어 원서 『Israel on the Brink』(종이책과 전자책)가 있다. 분쟁을 ‘정착민 식민주의’라는 틀로 읽는 라시드 할리디의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가자 침공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팔레스타인 해방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 질베르 아슈카르의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도 함께 있다.</p>

<p>역사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점령 아래 라말라에서 살아온 라자 샤하다의 일기 『점령을 살다』, 1991년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를 취재해 그린 ‘만화 저널리즘’의 선구작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과 같은 작가의 『가자 전쟁』, 쿠웨이트로 밀입국하려는 팔레스타인 남자 셋의 이야기인 가산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크바 이듬해인 1949년 여름을 다룬 아다니아 쉬블리의 장편소설 『사소한 일』이 있다. 정치적 입장만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 흔적이다.</p>

<p>더 눈에 띄는 건 이슬람 쪽이다. 이 책장에는 꾸란 번역본이 다섯 가지 있다. 파하드 국왕 꾸란 출판청에서 낸 1,401쪽짜리 한국어 번역과 959쪽짜리 영어 번역, 또 다른 영어 번역 『The Qur’an: A New Translation』, 김용선의 한국어 완역본 『코란(꾸란)』, 그리고 아랍어와 한국어를 일대일로 맞추는 원칙으로 일부 장을 직역한 『하나님의 마지막 성서 꾸란』이다. 이슬람과 무함마드에 대한 편견을 걷어 내려는 카렌 암스트롱의 『무함마드』, 동남아 각국의 이슬람화를 다룬 『동남아의 이슬람화』 1·2권, 히잡을 남성 중심 교리의 강요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이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하는 영역으로 본 『히잡은 패션이다』도 있다. 할랄 인증 실무 용어를 정리한 『이슬람 문화와 할랄인증실무용어』, 할랄과 하람의 원칙을 식품 산업에 적용하는 문제를 다룬 『할랄과 하람 그리고 할랄 산업』 같은 실무서까지 있다. 영어로 된 이슬람 혐오 연구서도 있다. 미국과 영국의 대테러 정책이 무슬림을 겨냥한 구조적 인종차별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아룬 쿤드나니의 『The Muslims are coming!』, 프랑스의 정치적 이슬람 혐오를 신자유주의와 좌파의 실패와 엮어 분석한 짐 울프리스의 『Republic of Islamophobia』다.</p>

<p>이건 ‘무슬림과 연대해야 한다’는 구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양이다. 연대하려는 상대의 경전을 직접 펴 보고, 그들이 무엇을 먹고 입는지까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p>

<p>종교 전반에 대한 관심도 같은 결이다. 성서학자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 조로아스터교를 최초의 세계 종교로 그려 낸 메리 보이스의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성경에서 종교개혁을 거쳐 이스라엘 건국에 이르는 계보를 추적한 『기독교 시온주의의 역사』, 성서학자가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을 반박한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한국 개신교 극우화의 기원을 분석한 『전광훈 현상의 기원』이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가 쓴 종교 책이 두 권 눈에 띈다. 유물사관으로 원시 그리스도교의 형성과, 그것이 원래의 공산주의적 성격을 잃게 된 이유를 밝힌 카를 카우츠키의 『그리스도교의 기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쓴 『신을 옹호하다』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는 한마디로 치워 버리지 않고, 사람들이 왜 믿는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이다.</p>

<h2 id="낱말을-고르는-사람-번역과-우리말">낱말을 고르는 사람: 번역과 우리말</h2>

<p>이 책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덩어리는 따로 있다. 제목에 ‘번역’이 들어간 책만 28권이다. 번역은 외국어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한국어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 27년 동안 200여 권을 옮긴 정영목이 번역에 대해 품은 질문을 담은 에세이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번역 지망생과 기성 번역가를 가르쳐 온 조영학이 글맛을 살리는 번역을 강의한 『여백을 번역하라』가 있다. 그 사이사이에 출판 번역가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되는지를 다룬 김택규의 『번역가 되는 법』, 출판 번역가의 수입과 생활과 입문 방법을 털어놓은 김명철의 『출판 번역가로 먹고살기』, 대기업을 그만두고 번역의 세계에 뛰어든 이야기인 이지민의 『그래도 번역가로 살겠다면』이 끼어 있다. 번역을 감상하는 사람의 책장이 아니라 번역을 일로 대하는 사람의 책장이다.</p>

<p>그 곁을 우리말 책과 사전이 받치고 있다. 20년 넘게 문장을 다듬어 온 교정자가 한국어 동사를 풀어 쓴 김정선의 『동사의 맛』이 있고, 이 책장에서 가장 두꺼운 책은 1,592쪽짜리 『보리 국어사전』(2026년판)이다. 한국어 교육 전문가를 위해 어미와 조사뿐 아니라 그것들로 이루어진 구 표현까지 모은 『어미 조사 사전(전문가용)』, 『콜린스 코빌드 어법사전』, 『능률 롱맨 영한사전』도 그 옆에 있다.</p>

<p>원서와 번역서를 짝으로 갖춘 책이 여럿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세라 자페의 『Work Won’t Love You Back』 옆에는 번역서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가, 어밀리아 호건의 『Lost in Work』 옆에는 번역서 『노동의 상실』이 있다. 방향이 반대인 짝도 있다. 평양에서 처음으로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 강주룡의 삶을 그린 박서련의 소설 『체공녀 강주룡』과, 안톤 허가 옮겨 2025년에 나온 영어판 『Capitalists Must Starve』다. 같은 문장이 두 언어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맞대어 보는 사람의 책장이다.</p>

<h2 id="반대편의-책도-꽂아-두는-사람">반대편의 책도 꽂아 두는 사람</h2>

<p>입장이 뚜렷한 책장은 보통 비슷한 책끼리만 모인다. 이 책장은 그렇지 않다.</p>

<p>여성이 이미 평등을 이루었다는 ‘포스트페미니즘’ 주장을 반박하는 주디스 오어의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노동 여성의 관점에서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쓴 토니 클리프의 『여성해방과 혁명』 옆에, 오늘날 한국 페미니즘의 관행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와 메갈리아·워마드의 ‘미러링’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혐오의 미러링』이 있다. 이슬람 혐오를 비판하는 책들 옆에는 이슬람 급진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이드 쿠틉의 옥중 저작 『진리를 향한 이정표』가 있다.</p>

<p>극우에 대한 관심은 특히 집요하다. 한국 극우의 역사와 궤적을 살핀 남태현의 『극우의 노래』, 패션 브랜드와 대학 캠퍼스와 온라인 게임처럼 뜻밖의 일상 공간에서 극우가 자라나는 과정을 추적한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속 10대와 20대의 혐오 언어를 풀어 쓴 『1020 극우가 온다』, ‘상처 입은 남성과 극우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단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김구를 평생 수십 건의 테러를 저지른 ‘정치적 암살자’로 다시 그리는 『테러리스트 김구』가 꽂혀 있다.</p>

<p>동의해서 산 책만은 아닐 것이다. 비판하려면 상대가 실제로 뭐라고 말하는지 직접 읽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상대를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는 이 책장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대목이다.</p>

<h2 id="책장의-여백-세월호-커피-별-해리-포터">책장의 여백: 세월호, 커피, 별, 해리 포터</h2>

<p>큰 덩어리 바깥의 책들이 오히려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p>

<p>제목에 ‘세월호’가 들어간 책이 다섯 권 있다. 그중에는 유가족을 인터뷰한 『금요일엔 돌아오렴』, 세월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민변이 남긴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다섯 달 동안 서른세 차례 열린 세월호 재판을 방청하고 법정 기록을 바탕으로 사고를 재구성한 『세월호를 기록하다』가 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책으로 지키고 있는 셈이다.</p>

<p>팔레스타인과 이슬람에 대한 관심은 한국 안의 이주민에게로도 이어진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기록한 『깻잎 투쟁기』, 한국에 사는 난민 43명이 직접 쓴 에세이를 엮은 『한국 거주 난민 에세이집, 안녕 한국』, 시리아 출신 친구가 한국에서 겪은 일상을 그린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가 있다.</p>

<p>마음의 고통을 보는 눈도 같은 곳을 향한다. 아이언 퍼거슨의 『Politics of the Mind: Marxism and Mental Distress』는 뇌와 약물에 초점을 맞춘 의학 모델 대신, 자본주의와 긴축이 어떻게 마음의 고통을 낳는지를 묻는 책이다. 이 책도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둘 다 가지고 있다.</p>

<p>먹고 마시는 일에도 진지하다. 커피를 과학 이론으로 공부하도록 돕는 『최낙언의 커피 공부』, 같은 저자가 신맛을 과학으로 풀어 쓴 『요리의 방점, 경이로운 신맛』, 50년 가까이 자가배전 융드립 커피를 내려 온 일본의 두 장인 다이보 가쓰지와 모리미츠 무네오의 대담집 『커피집』, 음식 비평가 이용재가 맛의 원리로 평양냉면을 그려 낸 『냉면의 품격』이 있다. 하늘과 땅의 이야기에도 눈이 간다. 명왕성을 행성에서 퇴출시킨 천문학자 마이크 브라운의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물고기’라는 분류 자체를 뒤집는 룰루 밀러의 논픽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그렇다.</p>

<p>가장 뜻밖인 건 해리 포터다. 이 책장에서 J.K. 롤링은 14권으로, 15권인 토니 클리프와 거의 같은 자리에 있다. 본편과 호그와트 단편집까지 모두 전자책으로 갖췄다. 반면 소설은 의외로 적다. 앞에서 말한 팔레스타인 소설들 말고는 『대성당』, 『위대한 개츠비』, 『이방인』, 『데미안』 같은 고전이 몇 권 있을 뿐이다. 이야기보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는 책에 손이 먼저 가는 독자다.</p>

<h2 id="맺으며-그래서-어떤-사람인가">맺으며: 그래서, 어떤 사람인가</h2>

<p>책장만 보고 그린 초상은 이렇다. 이 사람은 소련도 동유럽도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보는 한 사회주의 전통을 꾸준히 붙들어 온 사람이다. 1980~90년대에 나온 책부터 올해 나온 책까지 그 전통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이론서 곁에는 노동조합과 점거파업 같은 운동의 현장을 다룬 책이 놓여 있다. 동시에 상대의 언어로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연대하려는 사람들의 경전을 펴 보고, 비판하려는 사람들의 책을 직접 읽는다. 사전을 여럿 곁에 두고 원서와 번역서를 맞대어 보며 낱말 하나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커피를 과학으로 공부하고, 해리 포터를 끝까지 사 모았다.</p>

<p>이 사람에게 책은 세상을 바꾸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도 번역도 결국 다른 사람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제대로 옮기는 일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806권은 그 일에 필요한 연장들이 걸린 작업장의 벽처럼 보인다.</p>

<p>그리고 이 책장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올해 나온 책만 벌써 33권이다.</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내 책 806권의 목록만 보고 Claude Opus 5.5가 쓴 글. 책장은 읽은 책이 아니라 곁에 두기로 한 책의 목록이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claude-opus-read-my-bookshelf-cc254712.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claude-opus-read-my-bookshelf-cc254712.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title type="html">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나만의 앱</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10/13/vibe-coding-my-own-app/"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나만의 앱" /><published>2026-10-13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10-13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10/13/vibe-coding-my-own-app</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10/13/vibe-coding-my-own-app/"><![CDATA[<p>바이브 코딩으로 웹 앱을 하나 만들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바코드를 스캔해 가진 책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앱이다.</p>

<p>내 책은 600권 정도이고 파트너는 1000권이 넘다 보니, 갖고 있는 책이 어떤 것인지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미 산 책을 또 사곤 한다…. (가히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라 할 만하다.)</p>

<p>서재 관리 앱은 이미 여럿 있지만, 내가 딱 원하는 앱은 없었다. 이미 갖고 있는 책을 표시해 주는 기능, 출판사·저자별 정리, 한국 책 지원, 웹에 저장되어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는 기능 가운데 한 가지가 되면 다른 한 가지가 안 되는 식이었다.</p>

<p>바이브 코딩으로 오늘 만들었다. 총 3시간쯤 걸렸다.</p>

<p>일단은 파트너와 나만 쓸 계획이다. 이용자가 늘어나면 API 이용 한도, 이메일과 비밀번호 관리 등 신경 쓸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p>

<p>바이브 코딩에 조금씩 익숙해지니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점점 늘어난다. 대단한 것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지는 않다. 다만 나만을 위한 맞춤 앱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만족스럽다.</p>

<p>카메라가 처음 대중화됐을 때,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들이 느낀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물론 카메라가 있다고 누구나 사진을 잘 찍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을 담아 보고 싶어도 그림으로 그릴 엄두는 내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훨씬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p>

<hr />

<p>2026년 10월 15일에 추가:</p>

<p>독서 기록 기능도 달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갖고 있는 책, 전자책 등을 구분해 기록하고 관리할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한 기능만 맞춰 넣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바이브 코딩으로 책 바코드를 스캔해 서재를 관리하는 웹 앱을 3시간 만에 만들었다. 나만을 위한 맞춤 앱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만족스럽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vibe-coding-my-own-app-e6669b6b.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vibe-coding-my-own-app-e6669b6b.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title type="html">허구의 이중 잣대</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10/08/double-standard-frame/"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허구의 이중 잣대" /><published>2026-10-08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10-08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10/08/double-standard-frame</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10/08/double-standard-frame/"><![CDATA[<blockquote>
  <p>문체위 국감에서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5·18이나 세월호,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역사도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며 “왜 육 여사에 대해서만 왜곡된 내용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다뤄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석기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타살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영화로 다뤄도 창작의 자유냐”고 따졌다.</p>
</blockquote>

<p><a class="link-card" href="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281384.html" data-track="link_card_click" data-item="국감장으로 번진 ‘암살자(들)’ 논란…최휘영 “창작의 자유 보호 의무”" data-domain="hani.co.kr" data-post="허구의 이중 잣대"><img src="/assets/img/link-cards/hani-assassins-controversy.jpg" alt="" loading="lazy" />
  <span class="link-card-body">
    <span class="link-card-site">hani.co.kr</span>
    <span class="link-card-title">국감장으로 번진 ‘암살자(들)’ 논란…최휘영 “창작의 자유 보호 의무”</span>
  </span>
</a></p>

<p>조은희와 김석기는 ‘이중 잣대’ 프레임을 만들려 한다.</p>

<p>하지만 5·18과 육영수는 같은 범주가 아니다. 5·18은 무장한 국가 기구가 공식적으로 동원돼 벌인 학살이었고, 수십만 명이 참여한 대중 항쟁이었으며, 죽거나 다치거나 고문당한 사람만 수천 명이었다. 이미 입증된 사실의 양과 질이 다르다. 북한군 개입설은 ‘다른 해석’이 아니라 국가폭력을 부정하는 날조다.</p>

<p>반면 육영수 저격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내린 수사·재판 결론이 충분히 완결적으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니 의문과 가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암살자(들)〉은 특정 인물을 배후로 단정하지 않는다고 제작진이 밝힌 바 있다. ‘왜곡’ 공세는 출발부터 어긋나 있다.</p>

<p>이 문제에서 극우의 주류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위험천만한 징후를 읽을 수 있다. 주진우는 유해진에게 북한에 가서 살라는 글에 “북한상”이라고 댓글을 달았고, 지적을 받고도 북한 편을 드니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되받았다. 신자유연대는 10월 3일부터 한 달치 집회를 신고하고 유해진의 자택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사진을 공개했으며, 4일에는 실제로 집 앞에서 집회가 열려 지지자와 극우 유튜버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우리가 윤석열이다’ 스티커를 삼각대에 붙인 유튜버도 있었다.</p>

<p>여기에 영화 상영 중단 요구, 감독의 국감 출석 요구가 더해졌고, 국힘 이인선이 학교 단체관람 현황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검열과 괴롭힘을 두고 ‘표현의 자유’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이렇듯 원내 국힘 의원들과 국회 밖 극우가 서로 맞물리면서, 극우가 점점 주류화되고 있다.</p>

<p>〈암살자(들)〉을 방어해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의 검열과 조작, 협박을 숨기지 않고 보여 주고, 당시에도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을 올바르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파가 이 영화를 역사 전쟁의 표적으로 삼는 것이다.</p>

<p>표현의 자유는 권력자가 베푼 선물이 아니고, 권력자들의 검열과 괴롭힘을 치장하는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 대중 항쟁으로 아래로부터 쟁취한 권리다. 대중 항쟁에 대한 학살을 부정하는 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방패로 삼는 건 역겨운 일이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건 자유를 넓히는 게 아니라 반동을 봐주는 일이고, 극우가 누리는 자유가 커질수록 대중의 자유는 줄어든다.</p>

<p>(그렇다고 해법이 국가의 처벌이나 검열 권한 확대일 수는 없다. 국가가 검열권을 쥐면 가장 먼저 겨누는 것은 언제나 저항하는 사람들의 표현이다. 필요한 것은 사회적 규탄과 대중적 대응이다.)</p>

<p>김석기가 “노무현 대통령 타살설”과 “5·18 북한군 개입설”을 하나로 묶은 것도 같은 수법이다. 5·18은 국가 무장기관이 벌인 학살이고 그 피해자들이 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죽음을 둘러싼 사안이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둘을 ‘좌파는 성역을 만든다’는 하나의 그림으로 뭉뚱그리는 것이다.</p>

<p>물론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였고 노무현은 선출된 대통령이었으니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어느 쪽이든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에 대한 풍자와 상상을 국가가 막아서는 안 된다. 범여권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에 과도하게 반응해 온 것도 극우가 되받아칠 소재를 준 측면이 있다. 올해 7월 걸그룹 멤버가 쓴 경상도 사투리 ‘무섭노’를 두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일베식 표현이라고 주장해 사투리까지 검열하느냐는 반발을 산 일이 한 예다.</p>

<p>(그러나 다시금 강조하건대, 지금 공세를 벌이는 주체는 극우다.)</p>

<p>이재명 정부가 보여 온 모습도 이 공세의 배경으로 짚을 필요는 있다. 내란 청산에는 미적대고, 기업주들 입맛을 맞추며, ‘중도 포섭’으로 우파 일부를 끌어안으려는 사이에, 사회 진보를 바라던 대중의 환멸이 쌓이고 있다. 극우가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지금, 대중의 환멸이 쌓일수록 극우가 기를 편다.</p>

<p>필요한 것은 국가나 정부에 기대는 일이 아니다. 극우의 위협에 맞서 배우와 제작진을 지키고, 영화의 상영과 관람을 지켜 내는 대중적 연대다.</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암살자(들)〉 논란에서 5·18과 육영수를 같은 범주로 묶는 ‘이중 잣대’ 프레임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와, 극우의 주류화에 대한 경고.]]></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double-standard-frame-0ed7c92b.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double-standard-frame-0ed7c92b.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title type="html">『좌파 생활』 서평</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09/12/review-living-a-marxist-life/"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좌파 생활』 서평" /><published>2026-09-12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09-12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09/12/review-living-a-marxist-life</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09/12/review-living-a-marxist-life/"><![CDATA[<p><a class="link-card" href="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415593" data-track="link_card_click" data-item="좌파 생활 | 앤드루 펜다키스" data-domain="aladin.co.kr" data-post="『좌파 생활』 서평"><img src="/assets/img/link-cards/aladin-401415593.jpg" alt="" loading="lazy" />
  <span class="link-card-body">
    <span class="link-card-site">aladin.co.kr</span>
    <span class="link-card-title">좌파 생활 | 앤드루 펜다키스</span>
  </span>
</a></p>

<p>앤드루 펜다키스가 쓰고 유강은이 옮긴 『좌파 생활』(오월의봄, 2026)을 읽었다.</p>

<figure>
  <img src="/assets/img/review-living-a-marxist-life/cover.jpg" width="1200" height="1600" alt="『좌파 생활』 표지. 창가 빨래걸이에 ‘LIVING A MARXIST LIFE’라고 적힌 흰 셔츠와 양말이 걸려 있는 사진이 나무 탁자 위에 놓여 있다" loading="lazy" />
</figure>

<p>원제는 Living a Marxist Life. 한국어판 제목은 그다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어쨌든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관한 것이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하듯 정말이지 온갖 유형의 마르크스주의가 있지만(306-312쪽), 어쨌든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다.</p>

<p>‘마르크스주의 자기계발서’라는 모순적인 수식어를 자처하는 책인데, 그 덕분에 나는 흥미롭게 읽었다.</p>

<p>평일 낮에는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고 온갖 사소한 것들에 짜증을 느끼며 우울해하다가,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주말이나 평일 저녁이 돼야만 비로소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는 지치는 삶 속에서 이 책을 읽으니, 위안과 힘이 됐다.</p>

<p>그리고 “형태”에, “지구 차원의 체계이며 전 지구적인 상태”에, “견딜 수 없이 불합리한 사물들의 배열”에 분노할 것을 다시금 다짐하며 읽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일터였다. 일하다가 짬짬이 읽었다.)</p>

<p>다만 이 책이 비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이 과연 조직가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p>

<p>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자 동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으냐면 그렇지도 않다.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p>

<p>‘마르크스주의 자기계발서’라는 모순적인 수식어답게, 정말 희한한 책이다.</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마르크스주의 자기계발서’를 자처하는 책을 읽으며 위안과 힘을 얻었지만, 비마르크스주의자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고 굳이 추천하지는 않는다는 감상을 적었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review-living-a-marxist-life-c34aa470.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review-living-a-marxist-life-c34aa470.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title type="html">Moondrop Chu II, 2.5만원의 찌릿함</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09/10/moondrop-chu-ii/"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Moondrop Chu II, 2.5만원의 찌릿함" /><published>2026-09-10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09-10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09/10/moondrop-chu-ii</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09/10/moondrop-chu-ii/"><![CDATA[<p>지난 주, 하박국 씨가 X에 쓴 글이 논란이 됐었다.</p>

<blockquote>
  <p>음악은 안 들으면서 장비 타령만 하는 아저씨들도 꼴사납지만, 음악 좋아한다면서 에어팟으로만 음악 듣는 리스너 역시 안타깝다. 거기서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아티스트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지, 그걸 듣게 되면 음악 경험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고 있으니까.</p>
</blockquote>

<p>그 후 하박국 씨가 이렇게 덧붙이셨는데,</p>

<blockquote>
  <p>여기서 안타깝다고 이야기한 건, 수천 만원 짜리 장비와의 비교가 아니고 (저도 그런 장비는 없고요) 에어팟과 같은 가격대에 유선이나, 무선이라면 고음질의 코덱을 지원하는 안드로이드로만 가도 더 나은 청취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같은 가격임에도 차이가 꽤 나거든요.</p>
</blockquote>

<p>그걸 읽고 ‘에어팟과 같은 가격대에 더 나은 청취라니, 꼭 써봐야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p>

<p>이어폰 추천은 안 해주셨기에 클로드에게 물어봤다.</p>

<p>Moondrop Chu II, 7Hz Salnotes Zero, Truthear Zero:Red, Truthear Hexa라는 이어폰들을 추천해 주던데, 전부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전부 다 에어팟보다 훨씬 쌌다. 가장 싼 Moondrop Chu II는 2.5만원, 가장 비싼 Truthear Hexa는 11만원.</p>

<p>클로드를 얼마나 믿어도 될지 알 수 없어서, Moondrop Chu II를 속는 셈치고 사봤다. 별로더라도 2.5만원이면 뭐,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으로.</p>

<p>처음 들었을 때는 ‘역시 별로인데…?’ 싶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에어팟은 음이 부드럽게 들리긴 하지만 선명하지 않고 뭉툭한 반면에 Moondrop은 훨씬 선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p>

<p>그래서 음악을 좀 더 들어보니, 확연히 차이가 나고, 음악 감상용으로는 Moondrop이 훨씬 낫다.</p>

<p>단, 음악별로 차이가 크다.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먼저 K-Pop이나 V-Pop은 대체로 Moondrop이 특별히 낫다고 보기 어려웠다.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 Kygo의 〈Firestone〉이나 PREP의 〈Line by Line〉은 정말 찌릿하는 느낌이 들만큼 멋졌다.</p>

<p>청소년 때는 음악 듣기를 참 좋아했는데, 당시에 용돈을 모아서 큰 마음 먹고 산 B&amp;O A8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찌릿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어폰 이후로는 그런 느낌을 받기 어려웠는데, 나는 그냥 내가 그때로부터 20살이나 더 나이를 먹었으니 귀도 둔해지고 모든 경험이 좀 더 둔탁해질 수밖에 없는 탓이라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구나. 심지어 2.5만원짜리 이어폰으로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거였다니.</p>

<p>다만 모든 음악이 에어팟보다 좋게 들린 것은 아니었다. Effie의 〈down〉 같은 경우 정말 최악이었다. 마치 소음처럼 들렸다. cookii의 〈party girl〉 같은 경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 별로였다. 이 둘은 에어팟으로 들었을 때가 훨씬 나았다.</p>

<p>하박국 씨가 같은 날 이렇게 쓴 것도 떠오르는 경험이었다.</p>

<blockquote>
  <p>최근 하이퍼팝/디지코어 음악이 유행하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는 환경 탓이라 생각. 나는 음악에서 의도된 자극을 느끼고 싶은데, 에어팟에서는 이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나마 들으며 이게 전달되는 음악이 하이퍼팝/디지코어 장르. 내 기준 좋은 자극은 아니지만.</p>
</blockquote>

<p>역시 다시금 되새기는 결론. 평론가 무시하고 비난하는 걸 좋아하는 세태지만, 사실 그래봐야 이득보다는 손해 볼 일만 많은 것 같다. 평론가들 얘기를 들어서 나쁠 것 없다. 전문가는 괜히 전문가가 아니다….</p>

<p>원래 말씀대로 “에어팟과 같은 가격대에 유선”인 이어폰이라면 얼마나 좋으려나. 2.5만원짜리로도 이렇게 만족스럽다니.</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에어팟으로만 음악을 듣는 것이 안타깝다는 글을 계기로, 2.5만 원짜리 Moondrop Chu II 이어폰을 사서 들어 본 후기.]]></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moondrop-chu-ii-ebd06b51.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moondrop-chu-ii-ebd06b51.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title type="html">특권층?</title><link href="https://dongwook.org/2026/08/24/privileged/"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특권층?" /><published>2026-08-24T00:00:00+09:00</published><updated>2026-08-24T00:00:00+09:00</updated><id>https://dongwook.org/2026/08/24/privileged</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dongwook.org/2026/08/24/privileged/"><![CDATA[<p><a class="link-card" href="https://www.theatlantic.com/culture/2026/08/socialism-rich-kids-gordillo/688382/" data-track="link_card_click" data-item="Why Do Rich Kids Love Socialism?" data-domain="theatlantic.com" data-post="특권층?"><img src="/assets/img/link-cards/atlantic-socialism-rich-kids.jpg" alt="" loading="lazy" />
  <span class="link-card-body">
    <span class="link-card-site">theatlantic.com</span>
    <span class="link-card-title">Why Do Rich Kids Love Socialism?</span>
  </span>
</a></p>

<p>미국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민주사회주의자(DSA) 후보들이 잇달아 이기자, 보수·중도 언론은 이들을 부잣집 백인 대졸 청년들의 ‘위선’으로 몰아갔다. 《애틀랜틱》의 이 글은 그런 비난에 가세하기보다는 반대하는 쪽이기는 하다. 그러면서 더 깊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이렇게 묻는다.</p>

<blockquote>
  <p>왜 그토록 많은 ‘특권층’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혜택을 누려온 체제를 해체하려는 정치에 끌리는가?</p>
</blockquote>

<p>그리고 그 답으로 이런 사람들을 늘어놓는다.</p>

<blockquote>
  <p>교재비를 직접 부담해야 하는 교사, 생계를 위해 대학 세 곳을 전전해야 하는 시간강사, 취약 계층을 돕는 사회복지사, 사모펀드에 인수된 병원의 간호사, 로비 단체들이 안전 규정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보기만 해야 하는 연방 공무원, 십대들에게 자살 조언을 제공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데이터 엔지니어, 더 이상은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가 아닌 학위를 위해 막대한 학자금 대출을 져야 하는 학생</p>
</blockquote>

<p>(번역은 Journey의 발췌 번역에서 가져왔다.)</p>

<p><a class="link-card" href="https://x.com/atmostbeautiful/status/2091153367905255772" data-track="link_card_click" data-item="Journey (@atmostbeautiful) on X" data-domain="x.com" data-post="특권층?">
  <span class="link-card-body">
    <span class="link-card-site">x.com</span>
    <span class="link-card-title">Journey (@atmostbeautiful) on X</span>
  </span>
</a></p>

<p>필자는 이들을 에런라이크 부부가 말한 ‘전문 관리 계급’으로 묶는다. 대중에게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일을 맡아 온, 말하자면 체제의 홍보 부서다. 그런 사람들마저 자본주의를 버리고 있으니 심각한 신호라는 것이다. 결론에서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노동계급인 척하지 말고 교육받은 전문직 계층임을 당당히 드러내라고 권한다.</p>

<p>‘특권층’에 따옴표를 쳤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필자가 직접 든 목록을 다시 보자. 교재비를 제 돈으로 대는 교사, 생계를 위해 대학 세 곳을 전전하는 시간강사, 사모펀드에 인수된 병원의 간호사. 이들이 어째서 체제의 홍보 부서인가? 생산수단 없이 자기 노동력을 팔아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들은 노동계급이다. 게다가 아무리 일해도 처지는 점점 나빠진다.</p>

<p>자기가 든 예가 자기 틀을 반박하는데도 결론은 그대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p>]]></content><author><name>dongwook</name></author><summary type="html"><![CDATA[《애틀랜틱》 기사는 교사·시간강사·간호사를 ‘전문 관리 계급’으로 묶는다. 그런데 그 기사가 직접 든 예가 바로 그 틀을 반박한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privileged-0c02fec8.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dongwook.org/assets/img/og/privileged-0c02fec8.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