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손실변환’이 아니다

아마 다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일을 남이 함부로 말해서 화가 나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 봤을 텐데, 내 경우 최근에 본 유튜브 댓글이 그런 듯하다.

통번역사들 단톡방에서 ‘6년 전에는 교수들이 한강 작가 작품의 번역본이 별로라는 칼럼을 썼는데,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자 한국문학번역원이 그게 ‘번역의 힘’이라며 숟가락을 올린다’며 비웃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이런 경우는 화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번역가라면 응당 감수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한강의 여러 소설을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는 번역이 한국어 원문과 너무 달라졌다는 비판을 여럿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 비판에 스미스는 “아무런 표현이나 억지로 보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맞섰다고 한다. 즉, “한국어로 쓴 원작을 읽었을 때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원문 어딘가에 그런 표현이 있어 잔상이 남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기에 영어로 옮길 때 그 표현을 덧붙여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들어서 내 번역 실력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돌아보면 ‘번역은 기호를 옮기는 게 아니라 의미를 옮기는 것’이라는 정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스미스의 주장은 그런 정의와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확장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스미스의 번역을 읽으면서 나라면 이 정도 ‘모험’은 절대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긴 했다.)

아무튼 부커 인터내셔널상이 작가와 번역가 공동으로 상금을 주는 까닭도 그런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런 점에서 ‘『⁠채식주의자』를 쓴 한강과 영어로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가 아니라 ‘한강’이 단독으로 ‘맨부커상’을 받았던 양 보도하는 언론도 마음에 안 든다. 게다가 ‘맨부커상’이 아니라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인데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유튜브 〈흑백요리사〉 영어/일본어 더빙 비교 리뷰 영상의 댓글 화면. “번역이 손실변환인 이유지. 그래서 그 언어를 알면 원어판으로 듣고 보는 게 좋다.”라는 댓글과 “손실변환,,,열화판”이라는 답글이 보인다.

앞의 ‘숟가락 올리는’ 일은 ‘번역가라면 응당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의 댓글은 너무 화가 난다.

“손실변환”? “손실변환”? 번역이 존재하는 한, 난 그런 관점은 용납할 수 없다. 원본이 우월하고, 번역본은 그 열화판에 불과하다는 관점은 번역의 역사에서 늘 있었긴 하지만(라틴어와 유럽 ‘지역’ 언어의 관계가 그랬고), 이제는 좀 벗어나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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