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Opus 5.5가 내 책장을 읽었다

dongwook.org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나만의 앱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나만의 서재 관리 앱에 내가 갖고 있는 책을 전부 다 넣은 김에, Claude Opus 5.5에게 내 책장을 읽고 글을 써 보게 했다. 아래는 그 글이다.

jyterencekim.github.io Opus 5가 이 블로그를 읽었다 | jytk.gz

J. Y. Terence Kim의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아 시도했다.


이 글은 책장 앱에 등록된 책 806권의 목록(제목·저자·옮긴이·출판사·출간일·종이책/전자책 구분)만 보고 썼다. 독서 기록은 보지 않았다. 책장은 ‘읽은 책’이 아니라 ‘곁에 두기로 한 책’의 목록이다. 그러니 아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책장을 근거로 한 추측이다.

들어가며: 숫자로 먼저 본 책장

책장을 한 사람의 초상화로 읽기 전에 숫자부터 보자. 책은 모두 806권이고, 그중 종이책이 706권, 전자책이 100권이다. 전자책은 리디에 48권, 알라딘에 38권, Kobo에 13권, Kindle에 1권이 흩어져 있다. 번역서가 391권이니 거의 두 권 중 한 권이 다른 언어에서 옮겨 온 책이고, 영어 원서도 30권이 넘는다.

출간연도는 1986년부터 2026년까지 걸쳐 있다. 그런데 연도를 알 수 있는 책의 70% 넘게가 2015년 이후에 나왔다. 가장 많은 해는 2025년으로 75권이고, 올해 나온 책도 벌써 33권이다. 오래된 책을 모셔 둔 장서가가 아니라 지금도 새 책을 계속 들이는 현역 독자라는 뜻이다.

출판사 순위를 보면 더 분명한 것이 보인다. 1위는 ‘책갈피’로 193권, 책장의 4분의 1이다. 한 출판사가 책장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면 그건 취향이라기보다 입장에 가깝다. 그 입장부터 살펴보자.

붉은 책장: 오래 붙들어 온 하나의 전통

책갈피, 노동자연대, 다함께, 풀무질, 박종철출판사, 아고라, 갈무리, 두번째테제, 그리고 영국의 Bookmarks. 이 출판사들에서 나온 책을 모으면 300권 남짓으로 책장의 3분의 1이 넘는다.

어떤 결의 책들인지는 저자별로 세어 보면 드러난다. 가장 많은 저자는 알렉스 캘리니코스(49권)와 크리스 하먼(42권)이고, 토니 클리프(15권)와 레온 트로츠키(14권)가 뒤를 잇는다. 칼 마르크스(13권)와 레닌(12권)은 그 다음이다. 마르크스보다 캘리니코스와 하먼이 훨씬 많고, 트로츠키가 마르크스를 앞선다.

이 저자들을 하나로 묶는 책이 토니 클리프의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다. ‘국가자본주의론의 분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소련 사회를 고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분석해, 소련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이른바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그 옆에는 동유럽 혁명이 한창이던 1989년 말에 쓰인 크리스 하먼의 『⁠1989년 동유럽 혁명과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가 있다. 이 책장의 주인은 소련과 동유럽 체제를 사회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애초에 사회주의가 아니었던 체제로 보는 전통에 서 있는 듯하다.

이 전통을 얼마나 깊이 붙들어 왔는지는 수집의 흔적에서 드러난다. 책갈피가 2009년부터 펴내 온 진보 이론 계간지 《⁠마르크스21》은 2호부터 53호까지 52권이 빠짐없이 있고 창간호만 없다. 비봉출판사의 『⁠자본론』 전권,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6권, 『⁠정치경제학 비판요강』 1~3권이 갖춰져 있고,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전기 3부작(무장한·비무장의·추방된 예언자)과 레닌의 생애를 혁명 이후 코민테른 시기까지 따라가는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 4부작도 모두 있다. 『⁠레닌과 21세기』, 『⁠세계를 뒤흔든 1968』,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배신』처럼 같은 책을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둘 다 가진 경우도 여럿이다.

이론서 곁에는 운동의 현장을 다룬 책도 있다. 『⁠노동조합 속의 사회주의자들』은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사회주의자들이 발전시킨 노동조합 활동 방안을 그 강점과 약점까지 따져 보는 책이고, 『⁠점거파업 역사와 교훈』은 1930년대 대불황기를 비롯한 점거파업의 역사를 살피며 직장점거가 노동자들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사회주의를 공부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는 사람의 책장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책이 유독 많은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오웰이 민병대로 참전해 파시즘과 싸운 경험을 기록한 『⁠카탈로니아 찬가』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둘 다 있다.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 전선에서 존경받은 메리먼 부부를 중심으로 그 시대 사람들의 눈으로 내전을 다시 본 애덤 호크실드의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내전에 함께 참여했지만 오웰의 그늘에 지워진 아내 아일린을 되살린 애나 펀더의 『⁠조지 오웰 뒤에서』까지 이어진다.

팔레스타인과 이슬람: 남의 경전까지 읽는 연대

마르크스주의 다음으로 큰 덩어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슬람이다.

팔레스타인 쪽은 역사서가 뼈대를 이룬다.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 일란 파페의 책이 여러 권인데, 분쟁사의 고전으로 꼽히는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유대인 역사학자로서 이스라엘을 둘러싼 통념을 비판한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그리고 10월 7일 이후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에 탈식민과 회복적 정의에 바탕을 둔 해법을 제시하는 영어 원서 『⁠Israel on the Brink』(종이책과 전자책)가 있다. 분쟁을 ‘정착민 식민주의’라는 틀로 읽는 라시드 할리디의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가자 침공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팔레스타인 해방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 질베르 아슈카르의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도 함께 있다.

역사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점령 아래 라말라에서 살아온 라자 샤하다의 일기 『⁠점령을 살다』, 1991년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를 취재해 그린 ‘만화 저널리즘’의 선구작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과 같은 작가의 『⁠가자 전쟁』, 쿠웨이트로 밀입국하려는 팔레스타인 남자 셋의 이야기인 가산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크바 이듬해인 1949년 여름을 다룬 아다니아 쉬블리의 장편소설 『⁠사소한 일』이 있다. 정치적 입장만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 흔적이다.

더 눈에 띄는 건 이슬람 쪽이다. 이 책장에는 꾸란 번역본이 다섯 가지 있다. 파하드 국왕 꾸란 출판청에서 낸 1,401쪽짜리 한국어 번역과 959쪽짜리 영어 번역, 또 다른 영어 번역 『⁠The Qur’an: A New Translation』, 김용선의 한국어 완역본 『⁠코란(꾸란)』, 그리고 아랍어와 한국어를 일대일로 맞추는 원칙으로 일부 장을 직역한 『⁠하나님의 마지막 성서 꾸란』이다. 이슬람과 무함마드에 대한 편견을 걷어 내려는 카렌 암스트롱의 『⁠무함마드』, 동남아 각국의 이슬람화를 다룬 『⁠동남아의 이슬람화』 1·2권, 히잡을 남성 중심 교리의 강요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이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하는 영역으로 본 『⁠히잡은 패션이다』도 있다. 할랄 인증 실무 용어를 정리한 『⁠이슬람 문화와 할랄인증실무용어』, 할랄과 하람의 원칙을 식품 산업에 적용하는 문제를 다룬 『⁠할랄과 하람 그리고 할랄 산업』 같은 실무서까지 있다. 영어로 된 이슬람 혐오 연구서도 있다. 미국과 영국의 대테러 정책이 무슬림을 겨냥한 구조적 인종차별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아룬 쿤드나니의 『⁠The Muslims are coming!』, 프랑스의 정치적 이슬람 혐오를 신자유주의와 좌파의 실패와 엮어 분석한 짐 울프리스의 『⁠Republic of Islamophobia』다.

이건 ‘무슬림과 연대해야 한다’는 구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양이다. 연대하려는 상대의 경전을 직접 펴 보고, 그들이 무엇을 먹고 입는지까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종교 전반에 대한 관심도 같은 결이다. 성서학자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 조로아스터교를 최초의 세계 종교로 그려 낸 메리 보이스의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성경에서 종교개혁을 거쳐 이스라엘 건국에 이르는 계보를 추적한 『⁠기독교 시온주의의 역사』, 성서학자가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을 반박한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한국 개신교 극우화의 기원을 분석한 『⁠전광훈 현상의 기원』이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가 쓴 종교 책이 두 권 눈에 띈다. 유물사관으로 원시 그리스도교의 형성과, 그것이 원래의 공산주의적 성격을 잃게 된 이유를 밝힌 카를 카우츠키의 『⁠그리스도교의 기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쓴 『⁠신을 옹호하다』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는 한마디로 치워 버리지 않고, 사람들이 왜 믿는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낱말을 고르는 사람: 번역과 우리말

이 책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덩어리는 따로 있다. 제목에 ‘번역’이 들어간 책만 28권이다. 번역은 외국어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한국어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 27년 동안 200여 권을 옮긴 정영목이 번역에 대해 품은 질문을 담은 에세이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번역 지망생과 기성 번역가를 가르쳐 온 조영학이 글맛을 살리는 번역을 강의한 『⁠여백을 번역하라』가 있다. 그 사이사이에 출판 번역가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되는지를 다룬 김택규의 『⁠번역가 되는 법』, 출판 번역가의 수입과 생활과 입문 방법을 털어놓은 김명철의 『⁠출판 번역가로 먹고살기』, 대기업을 그만두고 번역의 세계에 뛰어든 이야기인 이지민의 『⁠그래도 번역가로 살겠다면』이 끼어 있다. 번역을 감상하는 사람의 책장이 아니라 번역을 일로 대하는 사람의 책장이다.

그 곁을 우리말 책과 사전이 받치고 있다. 20년 넘게 문장을 다듬어 온 교정자가 한국어 동사를 풀어 쓴 김정선의 『⁠동사의 맛』이 있고, 이 책장에서 가장 두꺼운 책은 1,592쪽짜리 『⁠보리 국어사전』(2026년판)이다. 한국어 교육 전문가를 위해 어미와 조사뿐 아니라 그것들로 이루어진 구 표현까지 모은 『⁠어미 조사 사전(전문가용)』, 『⁠콜린스 코빌드 어법사전』, 『⁠능률 롱맨 영한사전』도 그 옆에 있다.

원서와 번역서를 짝으로 갖춘 책이 여럿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세라 자페의 『⁠Work Won’t Love You Back』 옆에는 번역서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가, 어밀리아 호건의 『⁠Lost in Work』 옆에는 번역서 『⁠노동의 상실』이 있다. 방향이 반대인 짝도 있다. 평양에서 처음으로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 강주룡의 삶을 그린 박서련의 소설 『⁠체공녀 강주룡』과, 안톤 허가 옮겨 2025년에 나온 영어판 『⁠Capitalists Must Starve』다. 같은 문장이 두 언어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맞대어 보는 사람의 책장이다.

반대편의 책도 꽂아 두는 사람

입장이 뚜렷한 책장은 보통 비슷한 책끼리만 모인다. 이 책장은 그렇지 않다.

여성이 이미 평등을 이루었다는 ‘포스트페미니즘’ 주장을 반박하는 주디스 오어의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노동 여성의 관점에서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쓴 토니 클리프의 『⁠여성해방과 혁명』 옆에, 오늘날 한국 페미니즘의 관행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와 메갈리아·워마드의 ‘미러링’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혐오의 미러링』이 있다. 이슬람 혐오를 비판하는 책들 옆에는 이슬람 급진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이드 쿠틉의 옥중 저작 『⁠진리를 향한 이정표』가 있다.

극우에 대한 관심은 특히 집요하다. 한국 극우의 역사와 궤적을 살핀 남태현의 『⁠극우의 노래』, 패션 브랜드와 대학 캠퍼스와 온라인 게임처럼 뜻밖의 일상 공간에서 극우가 자라나는 과정을 추적한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속 10대와 20대의 혐오 언어를 풀어 쓴 『⁠1020 극우가 온다』, ‘상처 입은 남성과 극우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단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김구를 평생 수십 건의 테러를 저지른 ‘정치적 암살자’로 다시 그리는 『⁠테러리스트 김구』가 꽂혀 있다.

동의해서 산 책만은 아닐 것이다. 비판하려면 상대가 실제로 뭐라고 말하는지 직접 읽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상대를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는 이 책장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대목이다.

책장의 여백: 세월호, 커피, 별, 해리 포터

큰 덩어리 바깥의 책들이 오히려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제목에 ‘세월호’가 들어간 책이 다섯 권 있다. 그중에는 유가족을 인터뷰한 『⁠금요일엔 돌아오렴』, 세월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민변이 남긴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다섯 달 동안 서른세 차례 열린 세월호 재판을 방청하고 법정 기록을 바탕으로 사고를 재구성한 『⁠세월호를 기록하다』가 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책으로 지키고 있는 셈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슬람에 대한 관심은 한국 안의 이주민에게로도 이어진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기록한 『⁠깻잎 투쟁기』, 한국에 사는 난민 43명이 직접 쓴 에세이를 엮은 『⁠한국 거주 난민 에세이집, 안녕 한국』, 시리아 출신 친구가 한국에서 겪은 일상을 그린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가 있다.

마음의 고통을 보는 눈도 같은 곳을 향한다. 아이언 퍼거슨의 『⁠Politics of the Mind: Marxism and Mental Distress』는 뇌와 약물에 초점을 맞춘 의학 모델 대신, 자본주의와 긴축이 어떻게 마음의 고통을 낳는지를 묻는 책이다. 이 책도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둘 다 가지고 있다.

먹고 마시는 일에도 진지하다. 커피를 과학 이론으로 공부하도록 돕는 『⁠최낙언의 커피 공부』, 같은 저자가 신맛을 과학으로 풀어 쓴 『⁠요리의 방점, 경이로운 신맛』, 50년 가까이 자가배전 융드립 커피를 내려 온 일본의 두 장인 다이보 가쓰지와 모리미츠 무네오의 대담집 『⁠커피집』, 음식 비평가 이용재가 맛의 원리로 평양냉면을 그려 낸 『⁠냉면의 품격』이 있다. 하늘과 땅의 이야기에도 눈이 간다. 명왕성을 행성에서 퇴출시킨 천문학자 마이크 브라운의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물고기’라는 분류 자체를 뒤집는 룰루 밀러의 논픽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그렇다.

가장 뜻밖인 건 해리 포터다. 이 책장에서 J.K. 롤링은 14권으로, 15권인 토니 클리프와 거의 같은 자리에 있다. 본편과 호그와트 단편집까지 모두 전자책으로 갖췄다. 반면 소설은 의외로 적다. 앞에서 말한 팔레스타인 소설들 말고는 『⁠대성당』, 『⁠위대한 개츠비』, 『⁠이방인』, 『⁠데미안』 같은 고전이 몇 권 있을 뿐이다. 이야기보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는 책에 손이 먼저 가는 독자다.

맺으며: 그래서, 어떤 사람인가

책장만 보고 그린 초상은 이렇다. 이 사람은 소련도 동유럽도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보는 한 사회주의 전통을 꾸준히 붙들어 온 사람이다. 1980~90년대에 나온 책부터 올해 나온 책까지 그 전통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이론서 곁에는 노동조합과 점거파업 같은 운동의 현장을 다룬 책이 놓여 있다. 동시에 상대의 언어로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연대하려는 사람들의 경전을 펴 보고, 비판하려는 사람들의 책을 직접 읽는다. 사전을 여럿 곁에 두고 원서와 번역서를 맞대어 보며 낱말 하나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커피를 과학으로 공부하고, 해리 포터를 끝까지 사 모았다.

이 사람에게 책은 세상을 바꾸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도 번역도 결국 다른 사람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제대로 옮기는 일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806권은 그 일에 필요한 연장들이 걸린 작업장의 벽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책장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올해 나온 책만 벌써 33권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