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리 엡도, ‘그림으로 그렸을 뿐’?
손이상 씨가 “샤를리는 단지 선지자 마호메트를 ‘그림으로 그렸을 뿐’”이라며 샤를리 엡도의 만화 〈무함마드의 생애〉를 예로 들며 “선지자를 조롱하거나 이슬람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시는 걸 뉴스피드에서 우연히 봤다(원문, 현재는 접속 불가).
황당한 소리다. 그래서, 샤를리 엡도가 이슬람교와 무함마드를 어떻게 ‘그림으로 그려’ 왔는지 소개하고 싶다.
덴마크 《윌란스 포스텐》지 무함마드 만평을 옮겨 실으며. (“무함마드가 터번대신 심지에 불붙은 폭탄을 두르고 있는 모습, 천국에 온 이슬람 자살 폭탄 공격범에게 그들을 위한 여자는 없다는 등의 내용이 실”린 만평)
프랑스 정부가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를 입지 못하도록 금지한 조처를 환영하며.
(프랑스어 원문의 à l’intérieur는 ‘안에서’라는 뜻으로, ‘실내에서’와 ‘몸 안에’로 모두 읽힌다. 부르카를 집 안에서만 입으라는 말처럼 들리게 하면서, 그림에서는 부르카를 몸 안에 꽂은 모습으로 비튼 말장난이다.)
튀니지 ‘아랍의 봄’ 직후 선거에서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 ‘엔나흐다 운동’이 승리했을 때 이를 ‘축하’하며.
영화 〈언터처블〉을 패러디해 유대인과 무슬림을 그리며.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이 논란이 되었을 때.
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 하람’의 성노예들을 ‘복지여왕’(welfare queen)으로 묘사하며.
나는 여기서 유럽 내 소수자인 무슬림에 대한 괴롭힘에 편승하는 비열함밖에 안 보인다. 당연히 이번 살해 사건은 정말이지 끔찍하고 비극적인 일이지만, 이것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 몰고 가는 건 이들이 여태까지 저질러 온 비열함에 면죄부를 주는 것밖에 안 된다.
이 와중에 국민전선 파시스트 마린 르펜이 신이 나서 “생명과 자유는 가장 소중한 가치”라며 자신이 마치 자유의 수호자인 양 포장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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