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았구나
2013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와 기숙사 룸메이트로 지냈다.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고, 작년에는 결혼식에 초대받아 우즈벡에 갔다 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또다시 우즈벡 교환학생과 룸메이트가 되었다. 지난번과 다른 점은 내가 자원했다는 것.
그런데 신기하게도 2013년의 그 친구와 아는 사이이다. 아니, 우즈벡에서 같은 대학을 다녔으니 당연히 아는 사이일 수는 있는데, 같은 동네 출신이다. 이 친구들의 고향은 도시가 아니라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다. “거의 옆집”에 살았고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형, 동생 사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이번에는 만난 지 며칠 만에 훨씬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정치’ 얘기를 꽤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우즈벡 정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고, 한국의 공식 정치와 나의 정치적 견해에 관해서 말이다. 2013년의 친구와는 거의 그런 얘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소위 ‘자수성가’한 인물로서) 이명박과 정주영을 존경한다는 그 친구의 말에 당혹스러웠던 탓도 있겠지만, 당시에 내가 몸도 안 좋았고 사기가 그리 높지 않았던 탓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지금 같이 사는 이 친구가 먼저 내게 책장에 레닌 관련 책이 보이던데 러시아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봤다. 러시아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레닌에 관심이 있다고 답하며,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존경한다고 말했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봐 스탈린은 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레닌은 스탈린과 달랐고 훌륭한 혁명가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 뜻이 얼마나 잘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도 “세계 역사를 바꾼 사람”이라며 끄덕였다. 그런데 그러면서 “우즈벡에서도 ‘나이든 사람들’은 레닌을 좋아한다”고 말해서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한 걸까 궁금해졌지만, 걸어가며 얘기 나눈 거라 더 말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좀 있다가는 오늘(3월 8일)이 우즈벡에서는 여성의 날이라며 한국에도 비슷한 게 있냐고 묻길래, ‘세계 여성의 날’ 아니냐고 되물으며 그 얘기를 꺼내 보았다. “사실 원래는 안 좋은 날이었는데 러시아와 우즈벡에서는 좋게 기념한다”고 하길래 의아해져서 “왜 안 좋은 날이냐”고 물어봤다. 한국어로 설명하기 힘들다며 영어로 답했는데, 요약하자면 독일의 ‘prostitute’들이 쉬는 날을 보장해 달라고 왕한테 ‘demonstrate’한 날에서 시작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prostitute’들은 ‘bad women’이 아니며 왕한테 그렇게 요구를 하는 건 당연하며 ‘좋은 일’이라고 먼저 말했다. 그런데 내가 알던 유래와는 달라서, 나는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demonstrate’한 날을 기념해서 독일의 클라라 체트킨이라는 사람이 만들자고 해서 만들어졌으며, 러시아에서 1917년(1905년이라 잘못 말했다) 이 날 여성 노동자들의 ‘demonstration’으로 2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더욱 기념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prostitute’들이 시작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어찌 되었건 좋은 날이고 한국에서는 이 날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 같은 좌파들은 많이들 기념하며 지난 토요일에 기념 집회에도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는 중에 클라라 체트킨을 아는 눈치길래 신기해서 체트킨을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우즈벡에 클라라 체트킨이라는 이름의 동네가 있는데 ‘prostitute’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그래서 클라라 체트킨이 나쁜 여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prostitute’가 나쁜 여자가 아니라는 말을 또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고, 클라라 체트킨은 독일의 혁명가였고 레닌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레닌과 마찬가지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렇게 내가 알려 준 것도 있지만, 나도 정말 많이 배운다. 2013년의 그 친구든 지금 이 친구든 무슬림인데…. 나는 당연히 무슬림이 ‘잠재적 테러리스트’이고 ‘광신자’이고 하는 식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편견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부당하게] 치우친 생각’이라는 사전적 의미로서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는데, 그러니까 이런 편견이다. 마치 무슬림의 ‘기본치’ 혹은 ‘평균치’가 한국의 ‘독실한’ 기독교인 정도인 양 생각해 온 것이다. (사실 ‘독실한’ 기독교인에 대한 내 생각도 편견일지 모른다.) 기도 매일 열심히 하고, 술 안 마시고, ‘혼전순결’을 지키고…. 뭐 그런.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 무슬림이라 말하는 친구지만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 외에 내 편견에 들어맞는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딱히 기도를 하지도 않고…. 혹시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 무슬림들이 매일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린다고 알고 있는 분이 있다면 편견일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2013년의 친구는 상당히 ‘독실한’ 무슬림이었는데(스스로도 그렇게 말했고), 내가 바보 같게도 그런 식의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기도하냐며 식사 후와 자기 전에만 간단히 한다고 대꾸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같이 사는 이 친구는 식사 후에도 기도를 안 하더라! 술은…. 많이 마시진 않지만 꽤 자주 마시며, 라마단 기간에만 금주한다고 한다. 와인을 좋아한대서 같이 방에서 종종 와인 나눠 마시기로 했다.
오늘 그런 얘기를 실컷 하고도 여전히 바보같이 나는 우즈벡의 무슬림과 아랍의 무슬림은 종교 생활이 상당히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친구가, 우즈벡은 러시아 문화 영향을 받아서 다른 게 있기는 하지만 아랍 무슬림과 차이가 크진 않다고,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아랍계 무슬림 중 알고 지내는 사람도 없고 잘 모르면서 마음대로 생각했다는 걸 깨닫고 얼굴이 빨개졌다.
하여간 참 많이 배운다. 경험이 사람을 바꾼다는 걸 이런 면에서도 느낀다.
2026년 11월 4일에 추가:
몇 년 뒤 이 친구는 마음을 다잡았다며, 육류 등은 할랄 식재료만 사서 가급적 집에서 요리해 먹는 습관을 들였다. 술은 당연히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의 종교적 믿음과 실천은 당연히 변화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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