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벗기겠다는 선민의식

얼마 전부터 트위터에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이란인 여성 한 명을 팔로우해서 보고 있다. 한국에는 와 본 적이 없고, 다른 나라에서 유학 중이었지만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이란에 돌아와 있다고 한다.

이 사람은 히잡에 관한 옹호 트윗을 몇 개 쓴 이후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이 비난들을 보고 있는 것도 여러모로 흥미롭다. (참고: 첨부한 첫 사진의 한 이용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그냥 평범한 우익이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비난이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시길 바란다.)

이란인 여성이 올린 트윗 캡처. ‘다 알지도 못하면서 …’라는 글과 #이란여성 태그 아래 히잡을 쓴 이란 여성 사진 네 장이 있고, 그 아래에 1979년 이전과 이후 이란 여성의 옷차림을 비교하며 팔라비 왕조 시절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그리워한다는 다른 이용자의 트윗이 인용되어 있다
같은 이란인 여성의 트윗 캡처. 코로나 때문에 겨울부터 이란에 있는 유학생인데, 문제는 히잡이 아니라 미국 제재 때문에 국제은행계좌가 없어 학교 등록을 못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는지 묻는다

내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1. 히잡을 쓰는 것은 여성의 선택이어야 한다. 히잡을 강제로 씌우는 것에도, 히잡을 강제로 벗기는 것에도 반대해야 한다.
  2. 이란은 히잡 착용이 법으로 규정돼 있고, 쓰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는다. 평범한 여성들의 경우 작은 액수의 벌금 정도를 받는 것 같지만, 국제앰네스티 등이 여러 차례 고발한 바 있듯 조직적 저항을 주도하거나 하는 경우 강력하게 처벌한다.
  3. 그러므로 당연히 이란 정부의 히잡 강제 조처에 반대해야 하고, 이란 정부에 맞서 저항하는 이란의 페미니스트들을 지지해야 한다.
  4. 그러나 국제적,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이 이란인 여성의 히잡 옹호가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5. 우익들의 주장과 달리 1979년 이란 혁명 이전 팔라비 왕조는 ‘자유’롭지도 ‘민주주의’적이지도 않았고, 당시 히잡 착용은 억압받았다.
  6. 현재 세계의 ‘선진국’들에는 이슬람혐오가 광범하게 기승을 부리고 있고, 주된 공격 대상은 히잡을 쓴 여성이다.
  7. 5번과 6번의 맥락에서 히잡 착용은 한편으로 저항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무슬림 여성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 문제이기도 하고.
  8. 따라서 히잡이 강제인 이슬람 국가를 비판할 때조차, 좀 사려 깊을 필요가 있다.
  9. 트윗을 훑어보니 이 이란인 여성을 비난하는 한국인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전부 하나같이 한국에서 ‘탈코르셋 운동’을 매우 중요시하던데, 따라서 그들 나름대로는 논리적으로 일관된 것이기는 하다.
  10. 하지만 비난들을 지켜보면서, 탈코르셋을 ‘운동’으로 삼는 게 “거의 필연적으로 도덕주의와 선민의식을 내포”하게 된다는 차승일의 지적이 그들에게서 잘 드러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11. “사람들에게 죄책감이나 반발심을 주는 방식은 대중 운동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차승일의 지적에 동의하고,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 아쉬운 부분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벗어던지길 바란다면,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12. “제 문제는 지금 제가 원해서 쓴 히잡이 아니라 미국 제재땜에 국제은행계좌가 없어서 학교 등록을 못하고 있는것”이라는 이 이란인 여성의 트윗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이 트윗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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