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슬람 테러가 없는 이유”? 엉터리!
“한국에서 이슬람 테러가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봤다. 인터넷에는 늘 이런 엉터리 같은 이야기만 쉽게 퍼지지….
이태원의 서울중앙성원에 여러 번 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맘이 신도들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할 수가 없는 구조다. 작은 교회의 목사가 신도들과 아주 가깝게 이야기 나누고 그런 식의 구조와 같을 거라고 멋대로 상상하면 곤란하다. 전혀 그런 구조가 아니고, 그런 구조를 세울 수도 없는 환경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서방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의 성격에 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대다수 테러는 이민자 1세대가 아니라 2, 3세가 저지른다. 그리고 대부분이 ‘외로운 늑대’ 형이라서 국정원 같은 감시기관에서 파악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 대개는 이슬람중앙회 같은 곳에서조차 미리 파악할 수가 없다. 사실 서방에서 테러를 저지른 무슬림 중에서 평소에 꼬박꼬박 모스크를 나가던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것이다. ‘외로운 늑대’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이들은 해외의 테러 조직과 아무 연계가 없다는 점에서 ‘외로운’ 이들일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무슬림 커뮤니티와도 별 소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문제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서방 국가에서 나고 자랐으며 심지어 부모나 조부모의 고향에는 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2, 3세)이 왜 자신이 나고 자란 ‘조국’을 맹렬히 증오하게 됐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 증오의 근원에는 노골적인 차별과 천대, 불평등이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테러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사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는 실제 발생 건수보다 훨씬 과장돼 있기도 하지만, 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슬람 혐오’ 문제에 맞서 싸우는 것이 미래의 테러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소위 “할랄 도축 자동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이슬람 단체에서 ‘할랄’로 인정된다. 녹음기로 기도문을 반복 재생하고, 자동화된 도축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런 것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육류 생산에 있어서 경쟁이 안 된다. 천 년이 넘도록 살아남아 전 세계에서 수십억 신자를 거느리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같은 세계 종교는 공통으로 매우 ‘유연’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세계 종교가 될 수 없다. 이 종교들은 자본주의 이전에 탄생했지만, 자본주의에도 ‘유연’하게 ‘적응’해 살아남았다. 할랄 도축 문제도 그 수많은 ‘적응’ 중 하나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사실 이슬람에 대한 흔한 편견의 ‘거울 이미지’다. 이슬람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현대 문명에 적응하지 못한 후진적 종교”라는 편견 말이다. 그런 편견을 거울에 비추듯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나는 다음을 늘 강조하고 싶다. 이슬람은 ‘폭력’의 종교가 아니며, 그렇다고 나는 이슬람이 그 일반으로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가 그렇듯, 그냥 유연하디 유연하며 사람에 따라, 시대와 계급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세계 종교 중 하나일 뿐이다. 종교란 것이 원래 그렇고, 이슬람 또한 평범한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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