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아무리 사고팔아도 새로운 자본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문 답변 사이트 캡처. ‘주식을 왜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답변가가 포스코케미칼의 1조 원 공모를 예로 들며 주식이 바로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답한 글이다. 답변가의 프로필 그림과 닉네임은 회색으로 가려져 있다

너도나도 주식을 하는 시대인 것 같은데, 이런 유의 글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엄밀히 말해 저 ‘부자아빠’라는 답변자는 거짓말을 한 건 없지만, 큰 틀에서는 질문자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주가가 계속 오른다니까, 가만히 있으면 ‘벼락 거지’가 된다니까, 그럼 나도 주식을 사 볼까 하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적어도 수천만 원에, 대개는 억대의 돈을, (비록 며칠간의 단기간이라지만) 대출받거나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보통 ‘주식을 한다’고 하면 HTS를 들여다보고 있는 걸 말하지, 어느 누가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는 것‘만’ 하고 앉아 있는가?

물론 ‘자본주의의 꽃은 주식’이 맞지만, 그건 주식 투자가 “많은 사람들을 새로 고용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이 피땀 흘려 만든 잉여가치를 착취해 축적하고 또 축적하며 ‘돈놀이’를 하는 체제이고, 주식이 없으면 그 돈놀이판이 잘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식시장은 더 한층 심화된 돈놀이판이다. 주식시장에서 아무리 주식을 사고판다고 해서 새로운 자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국가자본주의 북한같이 주식시장이 없는 자본주의 국가도 존재하지만, 그 북한 국가조차 국가 차원에서는 돈놀이를 함께 하길 갈망한다(김정은은 “국제금융시장에 주동적으로 진출해 금융활동을 공세적으로 벌려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물론 대북제재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당연히 뒷길을 이용하고 있을 테고.

그리고 사실 남한에서도 그나마 주식시장이라 부를 만한 주식시장이 등장한 건 1970년대나 돼서였다.

아무튼, ‘왜 최근 금융시장이 실물경제와 이토록 큰 차이를 보이는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담은 글을 번역 중인데, 이 글도 마르크스가 주식과 같은 ‘가공[허구적] 자본’에 대해 지적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쉬는 시간에 잠깐 관련해서 글을 써 본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