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서평

aladin.co.kr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

강연 막바지에 누군가, 똑같지는 않지만 전에도 여러 차례 받았던 질문을 던졌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울한 뉴스들을 생각한다면, 선생님은 놀라울 만치 낙관적으로 보입니다. 무엇이 선생님한테 희망을 주는 겁니까?”

답변을 하려 했다. 나는 세계의 현 상황에 낙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질문을 던진 이는 내 심중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와 다른 참석자들이 보기에 나는 폭력적이고 불의로 가득 찬 세계를 엉뚱하게도 유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흔히 낭만적인 이상주의나 안이한 낙관적 사고라고 경멸 받는 태도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러한 희망을 실현시키고 이상들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행동을 자극한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한 행동을 실천하려는 의지는 어떤 확실성에 기반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인류가 저지른 잔인한 행위들을 나열한 기존의 시각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나타날 가능성에 기반해 생겨난다. 그러한 독해를 통해 우리는 전쟁과 더불어 전쟁에 대한 저항을, 불의와 더불어 불의에 맞선 반란을, 이기심과 더불어 자기희생을, 폭정 앞에서의 침묵과 더불어 도전을, 무정함과 더불어 연민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폭넓은 스펙트럼의 특질을 보여 주지만, 보통 이 중 최악의 것만 강조되며 그 결과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낙담하고 용기를 잃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건대, 용기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워 승리한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물론 충분히 많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는 충분하다.

정의를 위한 이러한 싸움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인간이다. 잠시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에도 남들과는 달리 아무리 작은 일이지만 무언가를 행하는 인간이다. 또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행위라도 불쏘시개 더미에 더해지면 어떤 놀라운 상황에 의해 점화되어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개개인의 사람은 필수적인 요소이며, 내 삶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내게 희망을 준 평범하거나 비범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14-16쪽

역사적 관점을 바꿔야만 우리의 어둠을 밝힐 수 있다. 금세기에 우리가 얼마나 자주 놀랐는지 유념해 보라. 민중운동이 갑자기 등장하고, 폭정이 뜻밖에 몰락하고, 꺼져 버렸다고 생각했던 불씨가 돌연 되살아나기도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놀라는 까닭은 끓어오르는 조용한 분노나 최초로 들려오는 희미한 항의의 소리, 우리가 절망하는 와중에도 변화의 자극을 예시하는 곳곳에 산재한 저항의 조짐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립된 행동들이 결합되기 시작하고 개별적인 일격이 조직된 행동을 뒤섞이며, 흔히 상황이 가장 가망 없어 보이는 어느 날 하나의 운동이 장막을 찢고 폭발한다.

우리가 놀라는 까닭은 현재의 표면 아래에는 언제나 변화를 가져오는 인간적 재료—억압된 분노, 상식, 공동체의 필요성, 아이들에 대한 사랑,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어 행동할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가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운동이 역사에 등장할 때 표면으로 튀어 오르는 요소들이다.

사람들은 경험이 풍부하다. 그들은 변화를 바라지만 무력하고 고독하다고 느끼며, 다른 것들보다 웃자란 잔디 잎사귀가 되어 잘려 나가길 원치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첫 번째나 두 번째로 움직여 신호를 보내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어떤 시기에서는, 대담한 사람들이 나타나 위험을 무릅쓰고 첫 번째로 움직이고 다른 이들이 그들이 잘려 나가지 않도록 신속하게 뒤따르게 된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그러한 첫 번째 움직임을 만들 수도 있다.

이는 터무니없는 공상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심지어 아주 가까운 과거에도 거듭해서 이루어진 변화의 방식이다. 매일매일 우리에게 쏟아지는 사진과 이야기들의 홍수에, 현재에 너무 압도당한 나머지 우리가 희망을 잃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25-27쪽

하워드 진이 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읽었다. 이 책을 이제야 읽다니 나 스스로도 좀 신기한 일이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에세이로, 하워드 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아마 이 책 제목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분이 내게 요즘 읽고 있는 책에 관해 물어보셔서 이 책을 답했더니, “그 말은 굉장히 유명하잖아요. 그게 책으로도 있군요.”라고 했었다. 사실, 하워드 진이 이 책의 제목으로서 처음 쓴 말이다.

간혹 그런 책이 있다. 너무나 유명해서 그 내용도 어느 정도 알다 보니, 마치 이미 읽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정작 실제로 읽게 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 말이다.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그중에서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 책의 한국어판 초판은 2002년에 나왔고 나는 정치적 좌파 사상을 받아들인 2005년 무렵부터 이미 이 책을 알고 있었다!

결국 16년이 지나서야, 2016년에 나온 개정판으로 읽게 됐다.

사람들은 경험이 풍부하다. 그들은 변화를 바라지만 무력하고 고독하다고 느끼며, 다른 것들보다 웃자란 잔디 잎사귀가 되어 잘려 나가길 원치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첫 번째나 두 번째로 움직여 신호를 보내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어떤 시기에서는, 대담한 사람들이 나타나 위험을 무릅쓰고 첫 번째로 움직이고 다른 이들이 그들이 잘려 나가지 않도록 신속하게 뒤따르게 된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그러한 첫 번째 움직임을 만들 수도 있다.

이 말이 정말이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사회 운동에 앞장서 온 실천적 지식인인 그의 경험이 잘 녹아 있는 말이다. 그가 역사학자라는 것도 한몫하는 말인 것 같고….

사람들은 변화를 바라지 않는 게 아니라, 무력하고 고독하다고 느끼기에 “다른 것들보다 웃자란 잔디 잎사귀가 되어 잘려 나가길” 원치 않는 것뿐이다. 첫 번째 움직임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몇 달 전 한 분이 내게 어떻게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확실히 나는 미래를 그리 비관하지 않지만, 그때 그분께는 그 까닭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다. 하워드 진의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까닭이 내가 역사적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 관점으로 볼 때 오늘날은 그리 비관할 만한 시기가 아니다. 분명히 우울한 소식은 많고 세계가 점점 위험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상 오늘날보다 더 안 좋은 시기는 얼마든지 있었고 그런 시기에도 변화는 가능했다.

하워드 진은 이 책의 마지막 장 「⁠희망의 가능성」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런 점만을 본다면, 역사적 관점을 잃어버리게 되어 마치 어제 태어난 사람처럼 오늘 아침 신문과 오늘 저녁 텔레비전 뉴스의 우울한 소식들만 알게 된다.

인종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자신들의 당연한 자리를 요구하는 대담한 여성들의 존재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진기한 골동품이 아니라 오감을 지닌 인간 존재라는 대중들의 각성 속에서, 걸프전 와중에 잠시 고조된 군사적 광기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확대된 군사개입에 대한 회의론 속에서, 단지 수십 년에 불과한 시간 동안 이루어진 놀라운 의식의 변화에 관해 생각해 보라.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바로 이러한 장기적인 변화를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관주의는 자기 충족적인 예언이 된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 의지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재생산한다.

우리에겐 지금 이 순간에 보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금세기에만도, 갑작스러운 제도의 몰락과 사람들 사고의 비상한 변화, 폭정에 맞선 반란의 예기치 못한 분출,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권력 체제의 신속한 붕괴로 인해 얼마나 자주 놀라게 되었는지를 잊고 있다.

하워드 진은 이 책에서 자신의 개인사와 자신이 참여한 사회운동의 역사를 술회하는데, 한편으로는 그가 굉장히 영웅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굉장히 겸손하고 솔직한 글쓰기 방식 덕분에 ‘나도 저렇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만든다.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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