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의 모든 것』 서평

aladin.co.kr 조현병의 모든 것 | E. 풀러 토리

E. 풀러 토리가 쓴 『⁠조현병의 모든 것』을 읽었다. 원제목은 한국어판과 다르지만, 한국어판 제목처럼 ‘모든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그리 과장은 아닐 정도로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조현병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정보’ 위주의 책이지만, 그럼에도 책 곳곳에서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는 다음과 같다.

정신의학자이자 조현병 및 양극성장애 연구자. 스탠리 의학연구소Stanley Medical Research Institute의 부소장이자 치료 옹호 센터Treatment Advocacy Center(TAC)의 창립자다. 치료 옹호 센터는 외래 치료 명령법과 민사입원법 통과와 시행을 추진하고, 미국 전역에서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사람들의 입원과 치료를 쉽게 하기 위한 개별 주들의 기준을 홍보한다. 토리는 감염에 의한 조현병 발병 가능성을 비롯하여 수많은 연구를 실시했으며, 중증 정신질환은 사회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는 활동으로 유명해졌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미국 국립 군의관 의과대학교Uniformed Services University of the Health Sciences의 정신의학과 교수이며 지금까지 22권의 책을 썼다.

《⁠조현병의 모든 것》은 토리가 지난 35년간 수백 명의 환자를 상담한 사례와 조현병의 원인, 진단과 증상, 치료, 예후에 관한 최신 연구를 총망라한 책으로 1983년에 출간, 현재까지 7판을 거듭하며 수많은 환자들과 가족, 정신건강 전문가 들에게 ‘조현병에 관한 최고의 지침서’라는 찬사를 받았다. 토리는 조현병 연구에 인생을 바친 전문가이자 조현병에 걸린 여동생을 둔 가족으로서, 조현병으로 고통받는 당사자와 가족 들이 비난과 수치로 인한 재앙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매우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들을 제안한다.

소개에도 나와 있듯 저자는 조현병을 생물학적 요인 때문에 생기는 뇌 질환이라고 본다. 물론 저자가 인정하듯 조현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저자는 5장에서 조현병의 원인에 관한 여러 이론을 정리하는데, “독자들은 이 여러 이론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최종 답은 여러 이론을 조합한 것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감염성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는 사람이므로, 서로 경쟁하는 이 이론들에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도 감안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이고 있는데, 조현병이 유전질환일 것이라는 (잘 알려진) 이론에는 회의적인 듯하다.

저자는 (당연하게도) 반정신의학 운동과 그 운동에 이론적 영향을 준 토머스 사즈, 로널드 랭, 어빙 고프먼 등의 인물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책 전반에서 그런 관점이 잘 드러날 뿐만 아니라, 부록에서 ‘조현병에 관한 최고의 책과 최악의 책 목록’을 소개하는데 그중 최악의 책 목록에서 어빙 고프먼과 토머스 사즈는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로널드 랭의 경우에는 그의 영향을 받은 여러 저자를 비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자는 조현병이 인류 역사 내내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조현병은 중세 후기에 시작됐으며 19세기부터 폭증하기 시작했다고 보는데(저자의 다른 저작에서 이 내용을 상세히 다룬다고 한다), 나로서는 이러한 견해를 처음 접하는 것이라서 놀랐다. 조현병 발병에 모종의 ‘사회적 요인’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생물학적 요인들을 지목한다. 당연히 저자가 드는 근거는 반박하기가 만만찮아 보인다.

《⁠마르크스21》은 23호(2018년 1~2월호)에서 특집으로 ‘자본주의와 정신의학’을 다룬 적이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수전 로젠탈의 「⁠정신병과 자본주의」를 읽으면서는 주장이 너무 일면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이번에 다시 찾아 읽으면서 그런 인상이 좀 더 강해졌다.) 이언 퍼거슨의 경우에는 그런 인상까지는 아니었지만, 그가 『⁠Politics of the Mind: Marxism and Mental Distress』에서 로널드 랭을 우호적으로 인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빙 고프먼과 토머스 사즈 등도 그 책에서 여러 번 인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맥락인지 자세히 읽어보지는 못했다. 내가 (잘 모르는 주제에 관해) 영어로 책 읽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빨리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으면…. 아무튼 나는 수전 로젠탈과 이언 퍼거슨보다는 저자의 입장에 더 호의적인 듯하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앞서 말했듯 저자는 ‘조현병에 관한 최고의 책과 최악의 책 목록’까지 적어뒀을 뿐만 아니라 매우 친절하게도 (주석과는 별도로) ‘추천’ 참고문헌까지 적어뒀는데, 슬프게도 압도 다수가 한국어로 번역돼 있지 않다. 언제 읽어볼 수 있을까.

조현병에 관한 책 자체가 너무나 적은 현실에서, 이런 책이 번역돼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 봤지만, 책을 주문해뒀다. 소장할 만한 책이다. 양극성 장애에 관해서도 이런 책이 한국어로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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