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이 또 필요하다고?
한경연(한국경제연구원)도 한경연이지만, 요즘은 이정환(《미디어오늘》 대표이사 사장) 같은 사람이 더 고약하고 문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대로 가면 90년생부터 국민연금 한 푼도 못 받는다”는 한경연의 선동에 대해서는 이정환의 반박을 참고하시라.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이정환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니 마니 하는 모든 얘기의 뒷배경에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깔려 있다. 나는 7년 전 본 한 댓글만큼 짧고 명료하게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를 보지 못했는데, “문제는 출산율이야 이 바보야 지금 출산율로 2060년까지 간다면 한국은 무조건 멸망이다”라는 촌철살인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댓글이 달렸던 기사는 “2060년 국민연금 수급 가입자를 1,448만 명으로, 납부 가입자는 1,357만 명으로 예상”한다고 가정하며 국민연금 ‘개혁’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 말을 쉬운 말로 풀면 돈 버는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 아니 그 이상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인구 구조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지속 가능’하지가 않다. 국민연금이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하에서는 “한국은 무조건 멸망”이다. 한경연의 원 보고서는 찾지 못했지만(언론은 받아쓰기할 거면 그냥 보도자료를 그대로 올려라), 비슷한 인구 구조를 가정하고 있으리라 예상한다.
물론 한국이 지금 출산율로 계속 가면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이지 않는 한) 당연히 그렇게 된다. 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니까. 그런데 왜 출산율이 이렇게 낮은가? 다들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지표는 그냥 내버려 두고, 한국에서 노인의 삶을 보여 주는 지표만 살펴보자. 노인빈곤율 OECD 1위. 그냥 1위도 아니고 2018년 기준 43.4퍼센트로 OECD 평균(14.1퍼센트)의 약 3.1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1위다. 노인 자살률도 OECD 1위, 2019년 기준 10만 명당 46.6명이 자살하며 OECD 평균인 17.2명의 2.7배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이 더 필요하다고?
“천하의 유시민도 실패했던 게 연금 개혁이죠. 2007년이 가장 좋은 기회였고요.”라는 이정환의 말에 피가 거꾸로 솟는데,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연금 ‘개혁’을 추진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와 유시민은 덜 받는 ‘개혁’(소득대체율 인하)에는 성공해 무려 3분의 1을 깎았는데, 더 내는 ‘개혁’(보험료율 인상)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정환은 이게 아쉽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지배계급은 노동력으로서 쓸모가 없어져 착취가 불가능하거나 착취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집단(노인·장애인·중증 환자 등)에 투자할 열의가 없다. 보건·사회적 돌봄 복지를 늘리는 데 매우 인색할 뿐 아니라, 경제 위기 시기에는 알량한 복지도 후퇴시키려 한다.
「‘간병 살인’ — 자본주의와 계급 불평등이 낳은 비극」
한국이 워낙 끔찍한 상황이라 쉽게 가려지지만, 여러 유럽 국가들도 거듭 연금 ‘개혁’을 시도해 온 이유다. 그리스에서 77살의 노인 디미트리스 크리스툴라스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구하는 처지가 되기 전에 존엄하게 생을 마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후 시민들은 현장에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쪽지를 붙였다.
앞으로 90년생이 국민연금을 받게 될지 못 받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지배계급이 부추기는 대로 ‘각자도생’식으로 대응하면 상당수는 확실히 타살당할 것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수 있지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있다. 이정환을 보면 그 속담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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