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1918』 서평
aladin.co.kr
팬데믹 1918 | 캐서린 아놀드
캐서린 아놀드가 쓴 『팬데믹 1918』을 읽었다.
역사상 최악의 대유행병으로, 1억 명의 목숨을 앗아 갔던 스페인 독감에 관한 이야기다. 원 책은 2018년에 출간됐지만 한국어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후에 나왔다. 그래서인지 번역을 급하게 한 티가 나는 실수들이 몇 번 눈에 띄었는데, 독서의 재미를 망칠 정도는 아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인데,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현실이었다는 점이 너무나도 끔찍하다. 아침에는 멀쩡해 보이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죽는 사람들, 입과 코로 피를 내뿜으며 죽어 가고, 숨을 쉴 수가 없어 얼굴이 청색으로 변해 가는…
냉정하게 말하건대, 코로나19는 스페인 독감보다 훨씬 약한 감염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체제의 죄는 훨씬 더 크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1918년과는 달리(당시에는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원인이 세균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금의 인류는 팬데믹 수개월 만에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이번에도 ‘생명보다 이윤을’이라는 자신들의 원칙에 충실했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의 상황과 지금이 너무나도 닮은 게 많다.
노동자들을 일터로 계속 실어 날라야 한다는 이유로 대중교통 내 과밀집이 감염 확산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한 것(114쪽).
독일이 유행병을 일부러 일으켰다는 음모론이 퍼져 나간 것(“이 저주를 독일 역병이라고 부르자. 모든 아이에게 저주스러운 것과 독일이라는 말을 연결 짓도록 가르치자.” 131쪽).
공중보건 책임자가 유행병의 심각성을 부인하며 학교와 극장을 폐쇄하는 등의 기본적인 조치조차 거부한 것(145쪽) 등등.
가장 섬뜩한 부분은 지배자들이 섣부르게 스페인 독감 종식을 선언했지만 스페인 독감은 세 차례에 걸쳐서 다시 돌아오며 더 큰 사망자를 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환자들과 의료진 사이를 바삐 돌아다니며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주지만, 스페인 독감이라는 역사적 대사건을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인지 자본주의 체제가 인수공통감염병이 더 빈번하고 더 위험하게 거듭 등장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인식은 이 책에서 전혀 찾을 수 없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쓰인 한국어판 저자 서문에서조차 없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다른 책으로 보충해야 할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