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나는 부산 출신이고, 사람들이 흔히 놓치기 쉬운 사실이지만 부산은 물류의 도시다. 부산항이 처리하는 물동량은 세계적 수준이다. 부산항 근처에 한 번만 가 본다면,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압도될 것이다.

그래서 2003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 눈에도 화물연대의 투쟁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 커다란 부산항의 주요 부두를 봉쇄하고 20만 대의 화물차 운행을 막아 전국의 물류를 멈췄으니 말이다. 당시에도 정부와 언론은 어마어마한 비난을 가했지만, 노동계급의 힘을 보여 주는 단호한 행동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당시 이 투쟁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너무 어려서 비록 그 의미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는 마르크스주의를 알게 됐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의 잠재력에 주목한 까닭은 노동계급이 단지 착취받는 계급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집단적’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이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도록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역사상 최초의) 계급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 점을 알게 됐을 때 나는 ‘노동계급에게는 세상을 멈출(그래서 바꿀) 힘이 있다’는 사례로 곧장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화물연대의 구호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가 얼핏 보여 주듯 말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은 다양하므로, 나는 왜 지금 화물연대가 파업에 나섰는지도 설명해야겠다. 정부는 ‘엄정 대응’을 운운하고, 언론은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다’고 비난을 쏟아붓고 있으니 말이다.

‘안전운임제 확대 안전운임 사수’ 손팻말을 든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집회장에 빼곡히 앉아 있다
‘유가 폭등 요소수 폭등 유가보조금 삭감 운행하면 적자’라고 빨간 글씨로 쓴 큰 팻말 옆에 조합원들이 앉아 있다
‘화물연대 총파업’ 깃발이 늘어선 도로 위에서 조합원들이 ‘화물연대 투쟁하라’ 팻말을 들고 앉아 있다
‘안전운임 사수’ 팻말 뒤에서 조합원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요소수 대란 폭등 안전운임제가 정답입니다’라고 적힌 붉은 팻말을 든 조합원들이 모여 있다

사진: 노동자 연대

그들은 화물 노동자들이 고유가에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평택항에서 서울까지 물류를 실어 나르고 돌아오면 운임료로 55만원을 받는다는데, 왔다 갔다 하는 기름값만 45만원이 나오는 게 지금의 고유가 현실이다. 언론들은 화물 노동자들이 마치 떼돈이라도 버는 양 묘사하지만, “우리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지가 언젠데 34살이 되도록 아직 학자금 대출 갚을 것만도 한참 남았다”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화물 노동자의 목소리는 절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물가가 치솟고 있다. 고유가 고통을 떠넘기지 말라는 화물 노동자들의 요구는 물가 인상의 고통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 고유가에, 물가가 치솟고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고, 세계적 공급 차질 문제 때문이며, 원자재 가격 인상을 소비자들에게 떠넘기려 하는 기업들의 이윤 논리 때문이고, 전반적 물가 상승 속에서도 그 파생금융상품 투기로 돈을 벌려고 하며 더 물가를 끌어올리는 투기꾼들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서방과 러시아 제국주의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점증해 온 탓이다. 세계적 공급 차질은 왜 일어났는가? 코로나로 인한 급격한 생산 축소와 회복 과정에서 시장이 너무나도 무계획적으로 생산하는 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간단히 한마디로 말해, 이 체제, 자본주의 체제 때문이다.

화물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는 까닭이 결국에는 이 체제와 연결돼 있듯, 화물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좌파들 사이에는 흔한 오해가 있는데, 임금 등을 위한 투쟁은 ‘경제투쟁’이고, 제도개혁을 위한 투쟁만이 ‘정치투쟁’(그래서 더 바람직한 투쟁)이라는 식의 오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요구 사항을 기준으로 투쟁을 구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쟁 양상의 차이, 즉 노동계급 전체의 것이냐(정치투쟁) 아니면 노동계급의 일부분의 것이냐(경제투쟁)가 핵심이다.

노동계급이 지배계급에 대항해 하나의 계급으로서 행동하며 외부에서 압력을 가해 지배계급을 굴복시키려 하는 운동은 모두 정치 운동이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볼테에게 보낸 편지(1871년 11월 23일), marxists.org

지금 화물연대의 파업이 경제적 요구 사항을 내걸고 싸우는 것일지라도, 그 요구는 노동계급 전체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런 점에서 더 큰 정치투쟁으로 나아갈 잠재력이 있고, 사회주의자들은 이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애써야 한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만약 노동자가 자본과의 일상 투쟁에서 비겁하게 굴복한다면 그들은 그 어떤 한층 더 광범한 운동을 일으킬 자격을 잃어 버리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임금, 가격, 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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