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아이들』 서평

aladin.co.kr 있지만 없는 아이들 | 은유

은유가 미등록 이주아동들을 인터뷰해 쓴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었다.

은유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 책과 검은 접시에 놓인 커피 잔이 회색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수 있는데, 미등록 이주아동이란 이주민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 중 부모가 체류자격을 상실하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한국 체류자격이 없는 아동을 말한다. 이 아동들은 태어나자마자,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불법’적인 존재가 된다.

‘불법체류자’라는 말이 애초에 법을 어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존재 자체가 불법이니까 또다른 불법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죠. 영화를 비롯한 대중매체도 부당한 이미지 형성에 기여하지 않았을까요.

이탁건 변호사, 28쪽

한번은 학교에서 다 같이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영화에서 불법체류자를 나쁘게 묘사했어요. 영화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한 게 아니었다는 게 밝혀졌는데, 그전까지 나쁘게 한 것처럼 몰아갔어요. 저는 눈치가 보이는 거예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친구들이 막 나쁜 말을 하고 욕하는 걸 듣고 더더욱 숨겨야겠다고 생각했죠.

달리아, 174쪽

미등록 이주 아동들의 삶을 읽다 보면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휴대폰을 개통할 수도 없고, 웬만한 인터넷 사이트 회원가입도 할 수 없고, 학교에서 교외체험학습을 갈 때도 보험을 들지 못해 가지 못한다. 심지어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고 1/N을 할 때도 계좌이체를 할 수가 없어 좌절하기도 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이 겪는 고통은 대부분 부모의 불안정한 체류 문제와 연결돼 있다.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민은 2021년 말 기준 이주민 5명 중 한 명으로 적지 않은 비율이다. 이주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미등록 상태가 된다.

한국 정부는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고용허가제’라는 이름의 악명 높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 노동자를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이용해 먹은 뒤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또다시 새로운 노동자를 데려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에 가족을 데려올 수도 없다. 한국에 계속 머무르지 못하게 하도록 제도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터를 옮기는 것도 극히 제한돼 있어 이주 노동자들은 극도로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강요받으며, 그래서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견디다 못한 이주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벗어나면 미등록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또 애초에 가족과 함께 살 권리가 보장되지 않다 보니 이주 노동자들이 배우자나 자식을 몰래 한국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는데 이때 그 가족들은 ‘미등록’ 상태가 된다.

정부와 언론은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의 일자리와 복지, 세금을 빼앗는다는 식으로 마치 ‘메뚜기떼’처럼 묘사하지만, 사실 정부가 이주 노동자들을 계속 필요로 하는 이유를 보면 그들이야말로 ‘메뚜기떼’다.

일할 수 있는 나이까지 교육시키고 길러내는 비용은 전부 본국에서 부담한다. 일할 나이가 되면 이주 노동자로 불러들여 이용해 먹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쫓아낸다. 대체로 나이가 젊으니까 의료비 부담도 적고, 시간이 지나면 쫓아낼 테니 노후를 보장해 줘야 할 까닭도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국가가 기본적으로 배타성과 배척에 기초한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다.

그러나 국경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근대 초기만 해도 대부분의 국경은 모호했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정당화할 여러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킨다. ‘민족’ 개념과 이를 지리적으로 나타내는 ‘국경’도 그중 하나다.

지배자들이 늘 잊는 한 가지 사실은, 이주 노동자든 선주 노동자든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바라고, 부당한 일에는 분노하고 맞서 싸울 줄 알고, 이를 위해 연대하고 협력할 줄 아는 인간 말이다.

이 책에서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주변의 평범한 한국 사람들에게서 받은 도움을 읽다 보면, 지배자들의 그 수많은 이간질에도 불구하고 연대와 희망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 가능성을 키우고 국경 자체에 도전해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을 도모할 책임감을 깊이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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