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기록하는 마음』 서평
aladin.co.kr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 | 이수정
이수정이 쓴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을 읽었지만… 추천하지 않는다. 다만 왜 비추천인지를 설명하면 좋을 것 같아 글을 써 보고자 한다.
먼저 읽은 분께 소감을 물었을 때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읽어 봤고, 그분과 거의 같은 소감을 느낀다.
이 책은 (제목과 표지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이슬람에 관한 에세이다. 저자는 이슬람 종교 예술을 가르치는 비무슬림 한국인이다. (건축양식 연구를 위해) 한국에 있는 여러 모스크와 예배소를 방문한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였던 모양인데, 아쉽게도 관점이 무척 별로다.
내가 이 책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저자가 ‘지방’에 있는 여러 모스크를 방문해 봤다는 사실 때문이다. 보통 모스크 하면 한국이슬람중앙회(KMF) 소속의 모스크만 떠올리기 쉬운데, 이슬람은 가톨릭과 달리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아니고 따라서 KMF만이 한국의 유일한 이슬람 단체가 아니다. 저자는 간판조차 없는 작은 예배소도 여럿 방문해 본 경험이 있는 듯하다.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그런 곳들을 어떻게 찾았는지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 봤는데, 그런 내용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책보다는 저자의 2018년 논문에서 주되게 다룬다는 것을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알게 됐는데, 그 논문은 자신이 방문한 여러 모스크와 예배소를 표로 정리해 놨다는 점은 도움이 되지만 아쉽게도 강원도 지역은 한 군데도 없으며 그 외에도 비어 있는 지역이 많다. 나는 (저자와 내가 아직 찾지 못했을 뿐) 강원도에 모스크나 예배소가 단 한 군데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튼 문제적인 것은, 저자는 최대한 좋게 말해야 굉장히 수세적인 태도로 시종일관 ‘무슬림 중에서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잘 걸러내야 한다. 그렇지만 대다수 무슬림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도의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에서 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저자의 시각은 소수 무슬림의 테러가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예컨대, 테러 중 다수가 이민 1세대보다는 2, 3세대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사실을 보자. 왜 그런가? 왜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에서, 무차별적으로 동료 시민들을 살해하는 끔찍한 증오를 품게 되는가?
사회에 깊이 아로새겨진 차별과 천대, 즉, 이슬람혐오 때문이고, 이슬람혐오는 제국주의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부추긴 이데올로기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 천연가스 매장지에 사는 사람들이 우연히도 무슬림이고, 1979년 이란 혁명 이래 반제국주의 저항의 상당수가 이슬람주의(정치적 이슬람)의 형태를 띠었기 때문이라는 두 가지 단순한 이유다.
테러는 이 뒤틀린 사회의 차별과 천대에 고통받고 지친 사람들 중 극히 일부가, 마찬가지로 뒤틀린 방식으로 맞서려는 행동이다. 그래서 질문은 ‘테러를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가 아니라, ‘이 사회의 이슬람혐오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가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이야기 중 가장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그래도 가정해보고 싶다. 만약 유럽이 다른 국가를 식민 지배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중략)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히딘에게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중략) 어쩌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을 수많은 가정의 순간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사람들은 그 순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사실 어느 시점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고 논할 수 없는 것이다.
173-174쪽
역사는 꼭두각시 인형극이 아니다. 역사는 (계급 간의) 투쟁이다. 누군가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선택”이다. 서방(그리고 동구권도)의 지배계급에게는 제국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침략과 점령을 이어가고 그걸 뒷받침할 이데올로기(이슬람혐오)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전 세계 평범한 무슬림들에게는 “최악의 선택”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건 평범한 비무슬림들에게도 “최악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평범한 한국인들이 무슬림을 만나며 처음의 편견이 바뀐 사례를 책 후반부에서야 아주 짧게 다룬 건 무척이나 아쉽다. 나는 희망은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교류하고 만나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