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서평

aladin.co.kr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 홍명교

홍명교가 쓴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를 읽었다.

홍명교의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책과 검은 접시에 놓인 커피 잔이 회색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저자는 2018년 중국으로 유학을 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다양한 젊은 활동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경험을 책으로 썼다. 이 당시 중국의 동부 해안의 산업 도시들에서는 노동자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졌고, 노동자 투쟁에 대한 대학생들의 연대도 형성됐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들을 거세게 탄압했고, 저자가 당시 만난 활동가들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연락이 끊겨 이 책이 나온 2021년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 책을 읽으면 중국에서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엄혹한 현실에서도 변화의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가 중국에 머물렀던 2018년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을 때다. 저자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전시〉에서 전시품을 지키는 보안 노동자들을 보며 “시꺼먼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그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그들의 표정은 활기차게 웃고 떠들며 단체사진을 찍는 공산당원들과 달랐다”(135쪽)고 묘사한다. 저자의 지인은 이를 두고 “저 보안원들은 다 임시직일 거야.”라고 말하고, 저자는 “중국 사회를 덮고 있는 큰 모순이 이 풍경 안에 다 섞여 있는 것 같았다”(137쪽)고 덧붙인다.

2018년 벌어진 자스커지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던 학생들은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탄압을 받았으며 동아리 운영에 큰 제약을 받다가 결국 대학 당국이 만든 어용 마르크스주의 학회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이런 현실들을 보며 저자는 묻는다.

극소수의 부유층은 초호화 생활을 영위하고, 대다수의 가난한 민중은 최저빈곤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 그러면서 노동자운동을 탄압하고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학생들을 마구 잡아가는 나라. 이런 나라를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186-187쪽

저자는 이렇듯 중국을 사회주의로 보는 것에 비판적이지만, 그렇다면 중국 사회의 성격은 무엇인가 하는 규정을 분명하게 내리고 있지는 않다. 저자가 중국에서 만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마오주의’로 표방하는 듯한데, 이들은 오늘날 중국 공산당이 ‘진정한 마오주의’를 따르고 있지 않다고 본다.

분명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마오쩌둥 사상’을 지도 사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조차도 온갖 모순이 뒤따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마오쩌둥 시절에는 없던 모순이 지금은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마오쩌둥 또한 여타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해 강력한 산업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그가 세운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 중국 국가는 일부 형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국가, 자본과 경쟁하며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오주의 자체가 진정한 대안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저자가 중국의 젊은 저항자들과 나눈 대화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한국의 노동·학생 운동, 좌파들에 대해 저자에게 질문한 내용을 보면서, 이들이 다른 나라의 운동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느꼈고 나 또한 중국의 운동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자가 (한국이든 중국이든) 다소 비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저자에게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운동을 평가하는 경향이 다소 보이는데 그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저자가 기록한 중국의 젊은 저항자들의 모습은 많은 영감을 주고, 그런 점에서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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