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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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길 |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 낸시 프레이저
낸시 프레이저가 쓴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를 읽었다.
저자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경제·생태·사회·정치 위기라는 여러 갈래의 위기들을 낳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부합하는 자본주의의 개념으로 ‘식인(제 살 깎아 먹기) 자본주의’를 주창한다. 그리고 이러한 ‘식인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며, 대안으로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다소 불명확하지만)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급진적인 책이 출간되고 꽤나 많이 읽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야겠다. 오늘날 다층의 위기 속에 급진적 사상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반자본주의적 지향을 분명히 하고 “제도화된 질서 전체, 즉 자본주의 사회[전체]를 바꾸어야만 한다”고(273쪽) 주장하는 책인 만큼 더욱 반갑다.
다만 이를 어떻게 이뤄 낼 것인가 하는 ‘전략’과 ‘대안’ 문제에서 약점이 있다. 내가 그 약점을 주되게 비판하려 하는 까닭은 저자와 내가 공통점이 적어서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변혁을 이뤄 낼 것인가 하는 ‘전략’의 문제가 오늘날 반자본주의 좌파에게 무척이나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착취 개념이 오늘날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와 생태 위기, 인종차별을 설명하는 데 협소하다고 주장하며, ‘착취’ 외에도 ‘수탈’을 중요한 동학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마르크스와 이후의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차별, 소외, 생태 위기 문제를 다뤄 온 것을 누락하며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저자의 차이는 위기를 총체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데 있지 않다. 저자가 ‘경계투쟁’이라고 부르는 투쟁들, “즉 사회적 재생산, 인간과 비인간 자연의 관계, 착취와 결합된 수탈, 정치 등의 영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투쟁”(307쪽)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결코 백안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견해 차이는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은 ‘수탈’이 아니라 ‘착취’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급에게는 파업으로 이윤 생산을 멈추면 자본가들과 국가에 결정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점에 동의하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저자가 ‘수탈’의 중요성을 과장하고 있다고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설사 저자의 말을 그대로 따른다 해도 ‘수탈’은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조건”(39쪽)이다.
저자도 지적하듯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정치·생태적 재생산의 지상명령을, 축적을 위해 설계된 상품 생산의 지상명령에 복속시킨다. 사회주의자는 이 뒤집힌 것을 바로 돌려놓아야 한다.”(280쪽)
좋다. 하지만 어떻게?
착취와 경쟁적 축적이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이고,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착취와 축적에 종속시킴으로써 다양한 위기를 낳는다. 그런데 이러한 맹목적 이윤 축적 경쟁을 중단시키지 않고 사회주의가 가능할까? 그리고 이를 중단시킬 ‘잠재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저자가 오늘날 여러 위기의 근원에 자본주의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위기를 총체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점,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변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은 매우 동의가 가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뤄 낼 것인가 하는 ‘전략’과 ‘대안’의 문제에서, 내가 보기에 저자는 마르크스주의를 혁신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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