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서평

aladin.co.kr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 임승수

임승수가 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을 읽었다.

임승수의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책과 검은 잔에 담긴 커피가 회색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얼마 전에 저자가 하는 와인 강의에 가서, 이 책을 저자로부터 직접 구입하고 사인도 받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아는 분이 “사회주의자에 와인도 좋아하시니, 임승수 씨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네요.” 하고 나에게 말을 거셔서, “하하, 그런가요” 하고 답했다.

물론 저자와 나는 공통점이 많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91쪽)에 분노하고 그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다고 본다는 점이 그렇다. 이를테면 나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고개를 연거푸 끄덕이게 된다.

이곳에는 능력의 차이만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빈부 격차가 존재한다. 수많은 노동자가 열악하고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 다치거나 사망할 때 그들의 고혈을 빠는 자본가들은 대대손손 마르지 않을 거대한 부를 축적해 간다.

일하는 자는 가난해지고 일하지 않는 자는 부자가 되는 기가 막힌 현실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노동 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에 나서면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가혹하게 진압하고 주동자를 이런저런 구실로 감옥에 보낸다. 노력만으로는 가망이 보이지 않으니 부동산, 주식, 코인 등 투기판에 나서서 요행으로 불로 소득을 노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상호 부조 정신과 공동체성은 무너져 내리고 배금주의와 극단적 개인주의가 판을 치며, 심지어는 그러한 삶의 태도를 ‘쿨’하다는 식으로 미화하기에 이른다.

50쪽

그러나 저자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와 내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에는 차이도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사적 소유’와, 사회주의를 ‘국가 소유’와 등치시킨다. 반면 나는 사회주의의 핵심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고 본다.

국가가 소유한다고 해서 곧 사회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그 국가를 누가 통제하느냐가 핵심이다. 저자의 신분제 사회 예시를 갖고 얘기하자면, 귀족들이 서원을 통해 토지를 ‘집단적’으로 소유한다고 해서 서원전(書院田)이 “귀족이 신분제를 통해서 토지(생산 수단)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누리며 부를 축적”(96쪽)하는 것과 반대되는 사례가 되지는 않듯이, 자본주의 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저자는 “초등학교 반장도 투표로 뽑는 세상이지만 사장을 노동자의 투표로 뽑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만큼 자본주의 시스템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옳게 지적하면서도, 뒤이어 “사회주의 기업”과 비슷한 사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국공립학교가 운영되는 방식을 보라”(110쪽)라고 매우 생뚱맞게 이야기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혼란스러운 정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대안으로 생각하는 베네수엘라의 경우에도, 차베스의 개혁은 지지할 만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곧 사회주의는 아니었다.

주요 산업이 국유화되긴 했지만, 그 방식은 대개 자본가들에게 시가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 주는 유상 국유화였고 그래서 베네수엘라 자본가들의 자산은 차베스 집권기에 외려 늘었다.

그리고 차베스는 석유공사(PDVSA)를 전면 국유화했지만 회계 내역을 공개할 의무는 오히려 없앴고, 2002년 ‘사장 파업’에 맞서며 탄생한 노동자 위원회들도 해체시켰다.

다른 부문에서도 변화는 대개 일방향적이었다. ‘미시온’ 프로젝트는 대중 자신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베네수엘라 국가의 우선순위에 따라 재정 지원이 들쑥날쑥해졌고, 국제 유가가 요동치면서 더욱 어려워졌다.

석유 수출 수익에만 의존하면 ‘미시온’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경제 전반의 장기적 전망이 어두워질 터였지만, 차베스는 민간 자본가들의 늘어난 부와 생산수단을 몰수해 대중이 직접 통제하는 대안을 추구하지 않았다.

오늘날 차베스의 정당과 그 후계자들이 여전히 베네수엘라를 통치 중이지만, 베네수엘라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고 그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이 치르고 있다. 그 까닭을 단순히 “미국에 찍혀 경제 봉쇄, 군사적 위협, 미디어에 의한 악마화 공세에 시달리고 있”(231쪽)는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요컨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과 이를 통한 사회·경제·정치 전반의 민주적 통제 없이 진정한 변화가 있을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야만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말하는 이 책이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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