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독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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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 안드레아스 말름
안드레아스 말름이 쓰고 추선영이 옮긴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두번째테제, 2025)를 읽었다.
장점이 많은 책. 화석연료와 팔레스타인의 관계가 시작된 시점으로 1840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풀어내는 것이 특히 흥미롭다. 미국 등 서방이 이스라엘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것은 로비 때문이 아니라, 화석연료와 관련된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말름의 주장이다.
영국으로부터 지도력을 넘겨받은 이후, 미국이 전 세계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의 확장을 한결같이 이끌어 왔고, 화석연료의 파괴력이 명백할 뿐 아니라 나날이 증가하는 바로 그 시점에도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의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요르단강과 지중해 사이에 자리 잡은 이 조그만 땅을 미국이 앞장서서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수수께끼처럼만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이유가 미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강력한 화석연료 로비 때문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미국 내 화석연료 로비는 강력하다. 그러나 로비는 표면적인 현상이다. 로비가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화석연료와 시온주의의 로비는 바로 장기지속이라는 관점에서 작동해 오던 심층 구조에서 병적으로 이상 증식한 생성물에 불과하다.
129쪽
그리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10월 7일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 갖는 의미에 관해 얼버무리지 않으며, 무장 저항 세력을 확고하게 지지한다. 서방의 학계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그게 절대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나는 서구 학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지식과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학계는 불합리한 상황이 만연해 있다. 그곳에서는 이스라엘이 추구하는 집단학살의 정치를 무시 또는 묵인하거나 정당화 또는 찬양하더라도, 어떤 자격도 상실하지 않을 수 있고 체면이 구겨지지도 않는다. 반면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즉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에 대항하는 유일한 세력인 무장 저항 세력을 지지하는 일은 금지된다. 나는, 일개 개인에 불과하지만, 그런 일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좌파가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에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그 투쟁을 선명하게 지지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서구의 진정한 불명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 다른 강연과 많은 글의 주제이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크게 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지지하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148-149쪽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저자는 『How to Blow Up a Pipeline』 등 전작에서도 그랬듯 직접 행동 전략을 중요하게 여기고, 조직된 노동계급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하지만 게릴라 투쟁만으로 이스라엘과 화석연료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저자가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을 좋아하는 까닭도 그들이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한다는 점도 있지만, 게릴라 투쟁을 강조했던 그들의 역사 때문도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팔레스타인 ‘좌파’들을 살펴보는 글이나 책도 한국어로 번역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행히 곧 팔레스타인 좌파들의 해방 전략을 살펴보는 글이 한국어로 번역돼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2025년 9월 30일에 추가:
람시스 킬라니의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략: 팔레스타인 좌파 내의 낡은 주장과 새로운 주장」(번역: 이원웅)이 《마르크스21》 52호(2025년 가을)에 실렸다. 원문은 《International Socialism》 183호(2024년 여름)에 실린 「Strategies for liberation: old and new arguments in the Palestinian left」이다. 본문에서 아쉬워한 지점과 맞닿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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