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의 ‘중도’

《⁠한국일보》는 ‘중도’를 자처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중도’란 ‘상한 카레’와 ‘설사똥’ 사이에서 상한 카레의 대안으로 똥과 1:1 비율로 섞어 먹는 걸 제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이준희 고문의 2024년 9월 칼럼을 잊지 않고 있다.

hankookilbo.com 민주당, 망상(妄想)정치 할 때 아니다

망상 던져대기는 나라를 퇴행시키고 민주당의 수권능력에 대한 회의만 키우는 백해무익한 전략이다. 이보다는 윤 정권이 헤매는 의료개혁 등 당장 급한 현안 수습에 당력을 모으는 게 정상이다.

계엄을 선포하며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려 한다는 경고를 “지금 선진국 한국에서 계엄이라니”라며 일축해놓고, 석 달 뒤 실제로 계엄이 벌어진 직후에 쓴 칼럼 「⁠보수는 없다」에서도 자기반성 한마디 없다. 언론인은 무오류의 존재인가? 사실 9월 칼럼보다 이 칼럼이 더 문제라고 본다.

hankookilbo.com 보수는 없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칼럼은 2026년 5월 「⁠내가 기권(棄權)을 고민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나도 싫지만, 그렇다고 “독점적 입법권력의 폐해가 내란 못지않게 크다”고 할 일은 아니다. 어처구니도 없고 균형 감각은 더더욱 없는 양비론이다.

기권은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라. 하지만 언론에 내란의 심각성을 가볍게 여기는 칼럼을 쓰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국힘이 내란 이후 극우의 주류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위험을 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hankookilbo.com 내가 기권(棄權)을 고민하는 이유

상한 카레와 똥을 1:1로 섞자는 말을 하는 언론이 ‘중도’라고 여겨지는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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