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drop Chu II, 2.5만원의 찌릿함
지난 주, 하박국 씨가 X에 쓴 글이 논란이 됐었다.
음악은 안 들으면서 장비 타령만 하는 아저씨들도 꼴사납지만, 음악 좋아한다면서 에어팟으로만 음악 듣는 리스너 역시 안타깝다. 거기서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아티스트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지, 그걸 듣게 되면 음악 경험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 후 하박국 씨가 이렇게 덧붙이셨는데,
여기서 안타깝다고 이야기한 건, 수천 만원 짜리 장비와의 비교가 아니고 (저도 그런 장비는 없고요) 에어팟과 같은 가격대에 유선이나, 무선이라면 고음질의 코덱을 지원하는 안드로이드로만 가도 더 나은 청취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같은 가격임에도 차이가 꽤 나거든요.
그걸 읽고 ‘에어팟과 같은 가격대에 더 나은 청취라니, 꼭 써봐야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어폰 추천은 안 해주셨기에 클로드에게 물어봤다.
Moondrop Chu II, 7Hz Salnotes Zero, Truthear Zero:Red, Truthear Hexa라는 이어폰들을 추천해 주던데, 전부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전부 다 에어팟보다 훨씬 쌌다. 가장 싼 Moondrop Chu II는 2.5만원, 가장 비싼 Truthear Hexa는 11만원.
클로드를 얼마나 믿어도 될지 알 수 없어서, Moondrop Chu II를 속는 셈치고 사봤다. 별로더라도 2.5만원이면 뭐,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으로.
처음 들었을 때는 ‘역시 별로인데…?’ 싶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에어팟은 음이 부드럽게 들리긴 하지만 선명하지 않고 뭉툭한 반면에 Moondrop은 훨씬 선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악을 좀 더 들어보니, 확연히 차이가 나고, 음악 감상용으로는 Moondrop이 훨씬 낫다.
단, 음악별로 차이가 크다.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먼저 K-Pop이나 V-Pop은 대체로 Moondrop이 특별히 낫다고 보기 어려웠다.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 Kygo의 〈Firestone〉이나 PREP의 〈Line by Line〉은 정말 찌릿하는 느낌이 들만큼 멋졌다.
청소년 때는 음악 듣기를 참 좋아했는데, 당시에 용돈을 모아서 큰 마음 먹고 산 B&O A8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찌릿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어폰 이후로는 그런 느낌을 받기 어려웠는데, 나는 그냥 내가 그때로부터 20살이나 더 나이를 먹었으니 귀도 둔해지고 모든 경험이 좀 더 둔탁해질 수밖에 없는 탓이라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구나. 심지어 2.5만원짜리 이어폰으로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거였다니.
다만 모든 음악이 에어팟보다 좋게 들린 것은 아니었다. Effie의 〈down〉 같은 경우 정말 최악이었다. 마치 소음처럼 들렸다. cookii의 〈party girl〉 같은 경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 별로였다. 이 둘은 에어팟으로 들었을 때가 훨씬 나았다.
하박국 씨가 같은 날 이렇게 쓴 것도 떠오르는 경험이었다.
최근 하이퍼팝/디지코어 음악이 유행하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는 환경 탓이라 생각. 나는 음악에서 의도된 자극을 느끼고 싶은데, 에어팟에서는 이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나마 들으며 이게 전달되는 음악이 하이퍼팝/디지코어 장르. 내 기준 좋은 자극은 아니지만.
역시 다시금 되새기는 결론. 평론가 무시하고 비난하는 걸 좋아하는 세태지만, 사실 그래봐야 이득보다는 손해 볼 일만 많은 것 같다. 평론가들 얘기를 들어서 나쁠 것 없다. 전문가는 괜히 전문가가 아니다….
원래 말씀대로 “에어팟과 같은 가격대에 유선”인 이어폰이라면 얼마나 좋으려나. 2.5만원짜리로도 이렇게 만족스럽다니.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