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이중 잣대

문체위 국감에서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5·18이나 세월호,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역사도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며 “왜 육 여사에 대해서만 왜곡된 내용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다뤄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석기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타살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영화로 다뤄도 창작의 자유냐”고 따졌다.

hani.co.kr 국감장으로 번진 ‘암살자(들)’ 논란…최휘영 “창작의 자유 보호 의무”

조은희와 김석기는 ‘이중 잣대’ 프레임을 만들려 한다.

하지만 5·18과 육영수는 같은 범주가 아니다. 5·18은 무장한 국가 기구가 공식적으로 동원돼 벌인 학살이었고, 수십만 명이 참여한 대중 항쟁이었으며, 죽거나 다치거나 고문당한 사람만 수천 명이었다. 이미 입증된 사실의 양과 질이 다르다. 북한군 개입설은 ‘다른 해석’이 아니라 국가폭력을 부정하는 날조다.

반면 육영수 저격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내린 수사·재판 결론이 충분히 완결적으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니 의문과 가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암살자(들)〉은 특정 인물을 배후로 단정하지 않는다고 제작진이 밝힌 바 있다. ‘왜곡’ 공세는 출발부터 어긋나 있다.

이 문제에서 극우의 주류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위험천만한 징후를 읽을 수 있다. 주진우는 유해진에게 북한에 가서 살라는 글에 “북한상”이라고 댓글을 달았고, 지적을 받고도 북한 편을 드니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되받았다. 신자유연대는 10월 3일부터 한 달치 집회를 신고하고 유해진의 자택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사진을 공개했으며, 4일에는 실제로 집 앞에서 집회가 열려 지지자와 극우 유튜버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우리가 윤석열이다’ 스티커를 삼각대에 붙인 유튜버도 있었다.

여기에 영화 상영 중단 요구, 감독의 국감 출석 요구가 더해졌고, 국힘 이인선이 학교 단체관람 현황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검열과 괴롭힘을 두고 ‘표현의 자유’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이렇듯 원내 국힘 의원들과 국회 밖 극우가 서로 맞물리면서, 극우가 점점 주류화되고 있다.

〈⁠암살자(들)〉을 방어해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의 검열과 조작, 협박을 숨기지 않고 보여 주고, 당시에도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을 올바르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파가 이 영화를 역사 전쟁의 표적으로 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권력자가 베푼 선물이 아니고, 권력자들의 검열과 괴롭힘을 치장하는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 대중 항쟁으로 아래로부터 쟁취한 권리다. 대중 항쟁에 대한 학살을 부정하는 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방패로 삼는 건 역겨운 일이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건 자유를 넓히는 게 아니라 반동을 봐주는 일이고, 극우가 누리는 자유가 커질수록 대중의 자유는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법이 국가의 처벌이나 검열 권한 확대일 수는 없다. 국가가 검열권을 쥐면 가장 먼저 겨누는 것은 언제나 저항하는 사람들의 표현이다. 필요한 것은 사회적 규탄과 대중적 대응이다.)

김석기가 “노무현 대통령 타살설”과 “5·18 북한군 개입설”을 하나로 묶은 것도 같은 수법이다. 5·18은 국가 무장기관이 벌인 학살이고 그 피해자들이 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죽음을 둘러싼 사안이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둘을 ‘좌파는 성역을 만든다’는 하나의 그림으로 뭉뚱그리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였고 노무현은 선출된 대통령이었으니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어느 쪽이든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에 대한 풍자와 상상을 국가가 막아서는 안 된다. 범여권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에 과도하게 반응해 온 것도 극우가 되받아칠 소재를 준 측면이 있다. 올해 7월 걸그룹 멤버가 쓴 경상도 사투리 ‘무섭노’를 두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일베식 표현이라고 주장해 사투리까지 검열하느냐는 반발을 산 일이 한 예다.

(그러나 다시금 강조하건대, 지금 공세를 벌이는 주체는 극우다.)

이재명 정부가 보여 온 모습도 이 공세의 배경으로 짚을 필요는 있다. 내란 청산에는 미적대고, 기업주들 입맛을 맞추며, ‘중도 포섭’으로 우파 일부를 끌어안으려는 사이에, 사회 진보를 바라던 대중의 환멸이 쌓이고 있다. 극우가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지금, 대중의 환멸이 쌓일수록 극우가 기를 편다.

필요한 것은 국가나 정부에 기대는 일이 아니다. 극우의 위협에 맞서 배우와 제작진을 지키고, 영화의 상영과 관람을 지켜 내는 대중적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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