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동북공정? 기무치 왜곡의 재탕

초등학교 때, 일본이 김치를 ‘기무치’로 국제 표준으로 등재하려 하며 김치를 빼앗으려 했다는 식의 내용을 배운 적이 있다. 교과서였는지 그냥 교사 개인이 한 말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하간 어린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배웠고, 그 배움은 이후 십여 년간 기억의 저편에 보관돼 있었다. 일본은 그런 시도 같은 걸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성인이 되고 나서 우연히 알게 됐다.

최근 중국이 김치를 파오차이 어쩌고 한다는 한국 언론들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민족주의에 반대하고 국제주의를 지지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이기도 하지만, 그걸 다 제쳐 놓더라도 ‘내가 초등학생 때 속아 넘어갔던 일본 기무치 등재 어쩌고 짓거리가 또 반복되는 거겠지’ 하고 냉소적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까 노컷뉴스의 기사(「⁠中매체 ‘한국김치 왜곡’ 있었나 없었나」)를 우연히 봤다.

노컷뉴스 기사 머리 화면. 제목은 “[이슈시개]中매체 ‘한국김치 왜곡’ 있었나 없었나”이고, 입력 2021년 1월 19일 오후 6시 15분, 송정훈 기자로 표시돼 있다
같은 기사 속 캡처. 중국어로 된 글 아래에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의 보도. 바이두 캡처’라는 설명이 있고, 그 아래에 바이두에서 관련 기사가 확인된다는 기사 본문 일부가 있다

나는 수년 전 처음 봤던 그의 글 때문에, 손이상 씨를 별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의 보도”라면서 중국어로 된 글 캡처를 올리는 황당한 짓을 하는 송정훈이라는 이름의 기자 양반보다는 손이상 씨가 그래도 조금은 더 신뢰가 가기에, 나 스스로 좀 더 찾아봤다.

나는 중국어도 못하고 간체자든 정체자든 한자라면 질색이기에 좀 힘들었지만, 아무튼 노컷뉴스 송정훈 기자가 올린 캡처의 원본을 찾아 구글과 파파고 번역기, 그리고 중국어 사전도 이용해 가며 읽어 봤다.

일단 내가 이해한 대로는, 그 글의 내용만 보면 “기사에선 알려진 바와 같이 피클과 비슷한 채소 절임인 파오차이(泡菜)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표준인증을 받은 것을 한국 김치와 연결시켜 ‘김치종주국의 치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라는 송정훈 기자의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다. 문제는…

가장 아래쪽에 来源:观察者网风闻社区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나는 중국어도 못하고 한자라면 질색이지만 그래도 중국어 ‘风闻’이 한국어 ‘풍문’과 같은 뜻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찾아보니 이미 이데일리 신정은 기자가 쓴 「⁠중국이 ‘김치’ 국제표준을 얻었다고? 두가지 오해」 기사가 있었다. (근데 区를 口로 잘못 썼다.)

환구시보는 중국 매체 관찰자망이 운영하는 플랫폼인 풍문커뮤니티(風聞社口·펑원셔취)라는 곳에 올라온 글을 가져와 자신의 바이두 계정에 올렸다. 일종의 ‘퍼가요’를 한 것이다. 펑원셔취에는 전문가는 물론 개인도 직접 글을 쓸 수 있다.

이를 일부 한국 매체가 환구시보의 보도로 오해했다. 중국의 최대 포털인 바이두(百度)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출처를 마지막에 표기하고 있어 이를 분별하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기사”라고 볼 수 없는 글인 것이다. 물론 환구시보가 ‘퍼가요’를 한 거니 책임은 있는 거겠지만, 관찰자망의 “보도”라거나 환구시보의 “기사”라는 식의 송정훈 기자보다는 “중국의 일개 네티즌 찌라시”라는 손이상 씨의 표현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깝다.

찾아보면서 보게 된 한국 기사 중에서 황당한 게 아주 많았지만 더 말 안 하련다. 손이상 씨의 다음과 같은 이 짧은 요약이면 충분한 것 같다.

손이상 씨의 페이스북 글 캡처. ①~⑥ 번호를 붙여, 중국 매체가 한국 김치를 중국 것이라 주장한 적이 없고 환구시보는 한국이 굴욕을 당했다는 기사를 낸 적이 없으며 요즘 한국 분위기가 미친 것 같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나는 환구시보라는 매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중국의 관영매체들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렇다고 한국 언론들을 신뢰할 수 있냐면 그렇지도 않은 게 슬픈 현실이다. 손이상 씨 말마따나 아주 그냥 “단체로 다 돌아버린 듯”하다. 물론 ‘일본이 김치를 기무치 어쩌고’를 돌이켜 볼 때 최근에 돌아버린 건 아니고 좀 많이 오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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